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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 Nov 03. 2019

2019년 5월 19일, 자궁

당신의 자궁은 안녕하십니까? 

수술 후 약 2주 동안 딱지가 떨어지면서 출혈을 했다. 염증이 있어 약을 먹어야 했지만 6주 후 물에 들어가거나 대중탕에 들어가도 된다는 진단을 받았다. 3개월 후 재 검사를 해 봐야하지만 한 숨이 지나갔다. 


 산부인과의 질환과 병원비는 비싸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지만 의외로 수술을 하고 나니 그건 또 아니었다. 개인보험에서 수술비와 진단비로 돈을 조금 받았고 이 금액으로 지난 모든 치료비와 약 비용을 커버하고도 조금 남을 정도의 비용었기에 걱정했던 것 만큼 비싸다고 느끼지 않았다. 수술 이후, 감기에 걸리면 동네 의원을 찾는 것 처럼 어렵지 않게 산부인과를 찾는 나의 인식도 달라졌다. 




# 정말 내가 사랑하는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싶었다. 그런 남자는 없을 것 같았고 생각의 끝엔 혼자 살아도 괜찮겠구나 생각했었다. 만약 결혼을 한다고 해도 아이는 있어도 없어도 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내 몸이 이렇게 되고 나서 의사 선생님께서 “아이를 가질 예정이 있으신가요?” 물었을 때 선듯 “아니오.”라고 대답을 못하겠더라. 아이가 없이 살아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은 했지만 나의 몸의 이상으로 아이를 가질 수 없는 상황이 된다니. “아이를 안 낳아도 되니 제 자궁을 모두 드러내주세요.” 라곤 할 수 없었다. 아이를 갖는 문제는 그리고 혼자 살아간다는 문제는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 쉬운 일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함께 사는 삶도 어렵지만 혼자 사는 삶에 대해서도 내가 그렇게 쉽게 생각해서는 안되었겠구나 생각했다. 


 # 내 평생 가지고 있던 자궁은, 매달 나를 귀찮게만 하던 생리 때문일까. 아니면 아주 어릴 적 부터 엄마가 "그 곳은 소중한 곳" 이라는 세뇌? 때문이었을까 나의 자궁은 내 것이라기보다 나중 아이를 위한 곳이라고 생각을 하며 살아왔던 것 같다. 그리곤 아이를 갖는 일은 나와 멀 것이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을까 불편하거나 걱정이 되면 병원에 가기보다 짜증이 먼저 났다. '왜 이래? 또 귀찮게.' 걱정보단 이런 감정들이 먼저 들었다. 위가 아프면 병원에 가서 약을 타오고, 콧물이 나면 망설이지 않고 이비인후과에 가서 진단을 받는데 산부인과는 이상하게 쉽지가 않았다. 


 수술을 하고 나니 내 자궁은, 내 생식기는 나의 아이를 생각하기 전 나의 것이라는 생각이 강해졌다. 나의 위처럼 나의 장처럼. 몇일만 변을 보지 않아도 이상하게 생각하듯 작은 신호에도 이상하게 생각해봐야하는 나의 소중한 장기들 중 하나. 더 소중하지도 더 특별하지도 않은. 하찮게 생각해야하지도 않을. 


# 블로그를 통해 같은 진단을 받은 사람들이 여러 질문을 남겨주었었다. 그 중 잊을 수 없는 질문이 하나 있다. “이 진단을 제 남자친구에게 어떻게 이야기하죠?” 이 질문을 읽자 마자 거친 말이 나왔다. 아 시발. 


 이 질문을 남긴 분에게 화가 나는 것이 아니라 이 상황에 화가 났다. 내 몸이 아프다고 하는데, 암에 걸릴지도 모른다는데, 남자친구 걱정을 먼저해야하다니 시발. 이 질문을 주신 분은 서른 쯔음 나이가 들었고 세명째 남자를 만났을 뿐이라고 했다. 자신을 더러운 사람으로 볼까봐 자신을 이해하지 못할까봐 걱정이 된다고 했다. 그 상대의 남자에게 화가 나는 것이 아니었다. 이 고민이 너무도 이해가 가서 더 깊이 거친 소리를 했다. 


 한편으론 내 남자친구가 외국사람이라서, 그는 이 모든 상황을 알면서도 내 몸을 먼저 걱정해주었던 그와 내 상황에 너무나 다행이기도 했다. 잘못된 인식. 그리고  나 역시도 처음 이 바이러스를 진단 받고 내가 문란한건가 스스로에 대한 검열을 먼저 했던 상황. 지금도 역시 이 진단을 받은 사람들은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는 안타까움. 한편으론 이런 일을 남에게 공개한다는 것이 오버인가 싶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지만 이 글을 브런치에 쓰게 된 이유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같은 진단을 받았고 생각보다 좌절할 일은 아니며 여자들 뿐만 아니라 남자들도 알아야하는 바이러스와 질병이라고 생각해서다. 이 글을 읽고 나서 한 번쯤 자신의 자궁 건강에 대해, 자신의 여자친구와 아내의 자궁건강에 대해 혹은 남자들의 건강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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