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카톡 프로필 문장은「생존과 낭만사이」다. 여러 번 프로필 사진은 여러 번 바뀌었어도, 문장은 변하지 않았다. 철학적이고 무언가를 담고 있는 문장이 좋았다. 내가 만든 문장이 아니다. 「생존과 낭만사이」는
가수 이승환의 12집 정규앨범에 수록된 곡이다. 노래를 듣고 제목을 봤다. 이거다 싶었다.
/지금 세상에서 제일 불쌍하고 불행한 나는
밀려든 허기에 열어젖힌 냉장고 불빛마저 시려
지워지지 않는 널 또 지우고 지운다
채워지지 않는 나의 같잖은 공허는 일종의 사치다 일터로 가야 한다
그래서 난 되도록 빨리
널 잊는다 널 잃는다 널 잊는다 널 잃는다
몇 날 며칠을 토하고 게우느라 속이 말이 아닌데
텁텁하던 입맛이 절로 다시 도는 걸 보니
살아내야 한다고 내 몸이 시킨다
내 일상의 중심은 네가 아닌 일이다 어차피 끝난 사이,
감정에 충실할 시간은 아깝기만 하니
널 잊는다 널 잃는다 널 잊는다 널 잃는다
팝송만 듣는다 가욘 다 내 얘기 같아서 이해 못 할 노래로 일부러 골라 듣는다
그래서 난 되도록 빨리
널 잊는다 널 잃는다 널 잊는다 널 잃는다
널 잊는다 널 잃는다 널 잊는다 널 잃는다
널 놓친다/
20대에 호기롭게 입사를 했다. 그리고 서른을 넘기 전 사랑하는(지금은 날 호령하는) 아내와 가정을 꾸렸다. 밖에서 공기업에 다닌다고 하면 신뢰하는 눈빛을 보냈다. 처음에는 겸손한 척했다. 이내 받아들이고 어깨에 뽕이 들어간 시절이 있었다.
30대가 되고 나를 닮은 아들이 생겼다. 어깨에 뽕은 벽돌로 변했다. 야간 근무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아들은 방긋 웃어주며 따랐다. 오후가 되면 놀아주다 지쳐서 소파에서 잠이 들었다. 아들도 내 볼록한 배에 올라와 낮잠을 잤다.
9급(지금은 7급)에서 시작했던 직급이 조금씩 올라가기 시작했다. 난 주로 연차가 쌓여 자동승진을 했다. 한 마디로 동기들보다 늦었다. 능력도 안 되면서 노동조합 현장 간부로 참여했다. 누구는 조합 간부를 이용해서 승진의 발판을 마련했다. 그런 부류를 어용이라 부른다. 난 애매모한 입장을 취했다.
강성도 어용도 아니었다. 그래서일까?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젊음은 용기를 주었지만 여우 같은 꾀는 부리지 못했다.
내게 생존은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단순히 회사를 다니며 가족을 부양하기 위함일까? 인플레이션을 따라가지 못하는 급여가 점점 작아졌다. 돈이 많다고 행복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돈이 있으면 불행은 막아준다고 생각한다. 아버지의 사업 실패는 내게 약이 됐다. 어머니에게 사업은 절대 하지 말아야 하는 악과 같았다.
병득성을 통해 접하게 된 주식이란 놈을 만나면서 잊고 있던 자본주의 시스템을 공부하게 된다.
비상금 650만 원을 키우면서 낭만을 꿈꾸게 됐다. 살기 위해 인정받기 위해 고개를 숙여야 하는 삶을 군대와 회사에서 만났다. 당당하고 싶었다. 그래서 잠시 그릇에 맞지 않는 조합 간부를 했는지도 모른다.
내 낭만을 위해 가족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다. 아내에게 명품 가방도 선물하고 싶고, 아들에게 비싼 스피커도 사주고 싶다. 정년을 12년 정도 앞두고 있다. 내게는 투자하는 삶도 글 쓰는 삶도 낭만이다.
앞으로 내게 어떤 기회가 위기가 닥칠지 모른다. 분명한 건 생존과 낭만사이의 무게 추는 낭만으로 옮겨지게 될 것이다.
'그래서 난 살아내야 하는 삶이 『생존』이고, 무언가를 열중하는 삶이 『낭만』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