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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와붕가 Oct 25. 2023

모임에 대한 단상.

끝내야 하는데 끝내지 못하는 精

모임이 만들어진 이유.


무척 바쁘고 힘들었던 기억으로 남아있는 5호선 K역. K역에서 근무하면서 스스로 목숨을 내놓는 승객들을 경험했다. 당시에는 지금과 같은 스크린도어가 없었다. 무슨 이유 때문인진 그들은 열차가 오는 와중에 선로에 뛰어들었다. K역은 그런 일이 다른 역보다 많았다. 사고 수습을 하고 난 다음에 직원과 공익요원의 표정을 잊을 수 없다. 


K역에 근무하는 당시 다른 반에 근무하는 부역장이 돌아가시는 일이 발생했다. 지병이 있으셨지만 관리를 하지 않으셨다. 교대를 하면서 얼굴을 보고 인사를 했던 사이다. 그리고 내가 처음으로 장례식장에서 관을 들어본 경험을 하게 됐다. 주변에 가족이 적어서 직원들이 퇴근만 하면 바로 장례식장에 가서 도왔다. 남겨진 어린 딸들이 어떻게 자랐을까 궁금해진다.


역장 사모가 심장마비로 돌아가시는 일이 발생했다. 이번에도 직원 모두 전과 같이 발 벗고 나섰다. 근무 중에 다급하게 퇴근하던 역장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그날이었다. 장례를 모두 마치고도 역장을 위로하기 위해 찾아갔었다. 어두운 방에서 홀로 음악을 듣던 그 모습이 생각난다. 


다양한 사연이 끊임없이 발생하는 역. 5호선 K역. 역장은 이런 직원들과 헤어지기 아쉬워서 선배 중 한 명에게 모임을 만들 것을 지시했다. 20명 가까운 직원이 모임에 소속됐다. 당시에는 이 모임이 오래도록 유지될 거라 보였다.


한 회사 다양한 근무.


모임에 소속된 회원은 본사에서 일근으로 현업에서 교대근무로 소속돼 있다. 그리도 때가 되면 발령이 나고 파트가 달라지면서 모임에 못 나오는 경우가 종종 발생했다. 그렇게 한 명 한 명 모임에서 나갔고 지금은 9명이 됐다.


회비는 월 만원이다. 적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미납하고 쌓이다 보면 부담스러운 액수가 되다. 미납분이 커서 나간 회원도 있었다. 이후 자동이체를 하기로 결정했지만 현재까지도 한꺼번에 납부하는 회원이 있다.


모임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역장은 회비를 내지 않았다. 아마도 초대 총무의 배려있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이후로 역장은 재혼을 했고 정년퇴임을 맞이했다. 중간에 역장이 사는 곳에 놀러 가며 친목을 다졌다. 거기까지였다. 역장은 술에 취하면 친한 회원에게 넋두리를 했다. 그리고 농작물을 팔아달라며 총무를 압박했다. 물론 농작물의 상태가 좋고 값이 적절하다면 환영한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3년 정도 물건을 팔아줬다. 아내는 이런 건 파냐고 실망했다.

다른 회원들도 마찬가지였다. 당시에 총무였던 나는 지켜볼 수 없어서 회원들에게 설문조사를 했다. 아니나 다를까 더 이상 물건 구입은 하지 않기로 결정하고 역장에게 전해주었다. 이후로 역장에게 전화가 없었다.

우리는 단지 호구고객이었다. 


코로나를 거치면서 2년간 모임을 하지 못했다. 각자가 홀로 지내면서 모임에 대한 필요성보다 개인의 시간을 갖기를 원하는 회원이 발생했다. 한 명의 우수회원이 탈퇴 의사를 밝혔다. 이전에 총무를 맡았고 모임에 적극적인 선배였다. 며칠이 지나고 다른 선배가 전화가 왔다.


"아이고~ 우리 총무님. 잘 지냈어?"

"네. 형님도 잘 지내시죠?"

"저기.. 우리 모임 이제는 해체하는 거 어떻게 생각해?"

올 것이 왔다. 왜 지금 이때 내가 총무인가.

"그러면 제가 몇몇 분께 의사를 물어보고 설문을 진행해 볼게요."


회원 중 친밀한 선배 몇 명에게 의사를 물어봤다. 돌아오는 대답이 비슷했다. 이제는 각자의 자리에서 자유롭게 보는 것도 좋아 보인다고 했다. 그렇게 모임톡에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결과는....


유지하자 5 : 그만하자 4


새롭게 시작하는 모임 그러나....


모임유지로 결정되고 오랜만에 참치집에서 모임을 가졌다. 모이면 발전적이 이야기는 나오지만, 대게 그때뿐이다. 새 총무를 뽑았다. 모임 유지에 적극성을 표현한 퇴임한 부역장을 선출했다. 3년간 총무를 하면서 배운 점도 아쉬점도 있었다. 아쉬움은 잊고 홀가분한 마음이 컸다.


새로운 총무가 선정되고 1년이 지났다. 아직까지 모임을 갖지 않았다. 모임톡에 형시적인 퍼다 나른 메시지만 올라온다. 밑에 달리는 댓글도 이제는 보기 힘들다. 


얼마 전 모임 해체 의견을 냈던 선배에게 전화가 왔다.


"코와붕가씨, 모임 어떻게 되는 거야"

"글쎄요. 총무님이 조용하네요"

"그러니까 해체하자니까."

"흐흐. 두고 봐야죠."


여러 사연으로 만들어진 끈끈한 모임이었다. 서로의 기쁨과 아픔을 공유하는 모임이었다. 이제는 사소한 이모티콘조차 사치가 돼 버렸다. 회비를 내지 않고 구심점 역할을 하지 못한 역장은 여러 경조사 혜택을 전부 챙겼다. 안타깝게 퇴직한 경완성은 모지리 같이 아직도 회비를 납부하고 있다. 그것도 모임에 참석하지 않으면서 말이다.


"형, 회비 돌려줄게 탈퇴해."

"나 아파서 퇴사했다고 그러는가?

 그래도 우리 정이 있지."


그놈의 정이 뭘까. 바보 같은 우리 경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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