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역에나 빌런은 있다.
종착역은 다른 역과 차이점이 있다.
첫째, 기지에 들어가는 열차를 보내기 전에 잔류 승객을 확인해야 한다.
둘째, 유실물을 최종 수거하는 역이다. 그래서 각종 유실물이 역무실에 넘쳐난다.
셋째, 막차에 실려오는 여러 곳 사시는 취객분들을 만날 수 있다.
열차에 실려 오신 승객들을 깨우면 대게 이런 질문을 받는다.
"여기가 어디죠??"
"여기는 B역입니다."
"여기 서울인가요?"
"....."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종착역 B역에서는 다른 존재감을 발산하는 토박이가 살고 있었다.
그는 바로.....
여러 역에 근무하다 보면 다양한 VIP(자주 서비스를 받으러 오는 역 근처에 사시는 분들)와 빌런(이상한 행동과 요구로 직원들과 다툼을 벌이는 분들)이 있다.
B역에 부임받고 며칠이 지났을까. 한 승객이 역무실 문을 당당하게 열고 자연스럽게 정수기에 다가갔다.
동글동글한 체형에 머리는 희끗희끗했다. 걸음걸이는 팔자걸음이었다.
그는 본인 안방같이 행동했다.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커피를 타고 있었다. 난 황당해서 그에게 물었다.
"저기요. 누구시죠?"
그는 황당하다는 듯 나를 힐끗 쳐다본 후 다시 고개를 돌렸다.
"여기 무슨 일로 오셨나요?"
"나 모르시오? 여기 지역 유지요."
"네?"
여기서부터 그의 황당한 이야기를 30분 동안 듣게 됐다.
요점은 본인이 근처 임대 아파트에 어머니와 살고 있다.
재개발이 되면 100억 아파트로 바뀐다.
그래서 본인한테 잘하면 1억을 주겠다.
그러하니 나 건드리지 말아라였다.
먼저 근무하던 직원들은 이 빌런의 정체를 익히 알고 있었다. 일명 '커피맨'으로 불리고 있었다.
이곳에 새로 전입온 직원들은 나와 같은 일?을 경험했다.
그리고 업무방해로 경찰까지 부르는 일이 있었다.
그는 아침저녁으로 사무실을 방문해서 커피를 타갔다.
그런데 그의 문제점은 정신 장애가 있다는 점이다.
특히, 약을 먹지 않은 날에는 조심해야 한다.
약을 먹지 않은 날에는 지하철을 이용하는 승객에게 시비를 건다. 대부분 연로하신 노인분들을 대상으로 했다. 소리를 지르고 폭행 전까지 이르는 상황이 펼쳐진다.
그런 날은 역무실에 와서 평소와는 다른 눈빛과 행동을 보인다.
"여기 커피가 왜 이거밖에 없어!"
"당신들 나 무시하는 거야!"
"내가 부자 되면 당신들 내가 다 잘라버릴 거야!"
그가 극도의 흥분상태가 되면 주변 사무기기를 부숴버리기까지 했다.
여러 번 경찰이 출동했지만, 다음날이면 온순해져서 커피를 타가곤 했다.
그곳을 떠난 지 10년이 됐다. 문득 커피맨의 근황이 궁금해졌다.
가까운 동기가 B역에 있어서 물어봤다.
"요새도 커피맨 와서 말썽 부리냐?"
"누구? 아... 그 사람 병원에 강제 입원시켰다고 하던데.."
커피맨이 내게 해줬던 말이 기억났다.
자신은 어린 시절 아버지로부터 많은 학대를 받았다고 했다.
그래서 죽여 버리고 싶었다고, 지금 이렇게 만든 것도 아버지 때문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