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22년 전 난 입사 3년 차 주임이었다. 당시에 근무하던 지하철 역은 5호선에서 악명이 높은 곳이었다.
출구 밖으로 나가면 산동네 연립에 둘러싸여 있고, 좁은 도로와 인도가 답답한 곳이었다.
밤이면 술에 취한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괴성을 지르고, 시비를 거는 승객이 많은 곳이다.
야간근무만 들어오면 누군가는 취객을 응대하고 있었다. 어쩔 때는 직원 한 명씩 다른 승객과 다투고 있는 장면이 연출됐다. 난 표를 팔면서 이곳이 마치 경찰서처럼 느껴졌다.
주말도 명절근무도 다른 역과 다르게 분주했다. 가파른 에스컬레이터가 멈추면 승객들의 육두문자를 온몸으로 받았다. 에스컬레이터 사고 건수도 단연 최고였다. 뉴스에도 승객이 에스컬레이터에서 구르는 장면이 나왔다.
여러 번의 사상사고도 있었다. 지금과 다르게 당시에는 승강장에 '스크린 도어'가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
열차가 오면 뛰어드는 안타까운 일이 여러 번 있었다. 녹화된 흑백 화면(당시에는 흑백화면이었다)으로 사고를 본 후 눈을 찔끔 감았던 때를 기억한다.
그리고 역장의 사모가 갑작스레 돌아가셨다. 다른 반에 근무하시던 부역장이 지병으로 돌아가셨다.
여러 일로 그곳에 근무하면서 여러 일이 많았다. 서로가 힘들었던 추억들로 헤어지기 아쉬웠을까. 모임을 결성하게 됐다.
2년 만에 모임 참석을 하러 갔다.(작년에는 근무라 참석을 못했다) 총무가 모임광고를 하면서 마지막 모임을 예고했다. 22년을 정리하는 모임으로 제목으로 공지를 올렸다.
나는 바로 전 총무였다. 총무를 맡으면서 회원 한 분이 정년 퇴임을 하셨다. 그리고 바로 코로나가 덮쳐왔다.
코로나 이후로 모임의 횟수가 줄었다. 다른 모임들도 비슷한 현상을 보였다.
회원 구성은 본사에서 근무하는 직원과 현장 근무자로 나뉜다. 구심점이 없는 상태로 같은 회사를 다녀도 서로의 관심사가 달랐다. 모임을 진행하던 중 친한 직원들로부터 모임 유지를 심각하게 고려해 보자는 의견을 받았다.
단톡방에 모임 유지에 대한 설문조사를 했으나, 1표 차이로 모임을 유지하게 됐다. 이후 새로운 총무를 뽑았다. 새 총무는 모임을 살려야 했다. 그렇게 2년이 지났다. 모임은 전과 비슷하게 흘러갔다. 총무는 더 이상 설문조사를 하지 않고 모임 해체를 알렸다.
1명을 제외하고 모두 모였다. 지금은 높은 직급에 있는 분이 많아졌다. 권위적이지 않고 선한 분들이 우리 모임에는 대부분이다. 지난번과 다른 게 이제는 해체 수순을 밟기로 결정했다. 누군가 나서서 모임 총무를 하겠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남아 있는 회비로 기념패와 금 1돈을 갖기로 했다. 총무는 현금으로 나눠버리기에 아쉽다고 했다.
마지막 모임 과정은 생각보다 즐거웠다. 단톡방은 유지하기로 했다. 이제 이 모임은 공식적으로 없어졌다.
올해 한 친구가 떠났고, 한 모임이 없어졌다. 24년, 씁쓸하면서도 후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