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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아 Feb 08. 2023

뮤즈와 영감에 대하여

연극 '세익스피어 인 러브'를 보고

** 이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위대한 업적을 남긴 사람은 특별한 삶을 살았을까. 위대한 작품에는 놀라운 경험이 필수적인 것일까. 작가는 

성실하게 상상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나는 '셰익스피어 인 러브'가 애틋하게 와닿지 않았다. 다만 뻔한 이야기 속에 다양한 소재들을 주제에 벗어나지 않게 담아내는 그릇으로서 '셰익스피어 인 러브'는 특별하다.


연극 '셰익스피어 인 러브'는 가난한 작가 셰익스피어가 '로미오와 줄리엣'을 완성해 가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셰익스피어는 ‘로미오와 에델, 해적의 딸’이라는 새로운 작품을 쓰고 있던 중 연극 오디션에서 토마스 켄트라는 이름으로 남장을 한 부자 상인의 딸, 비올라 드 레셉스를 만나게 되고 그녀(그)를 극단에 캐스팅한다.


연회장에서 본래의 모습을 한 비올라를 우연히 만난 셰익스피어는 한눈에 반하지만 비올라는 이미 귀족 위섹스와 정혼한 사이이다. 셰익스피어는 극단에 들어온 토마스 켄트가 비올라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서로 사랑에 빠지게 된다. 비올라와의 사랑을 통해 영감을 받으면서 셰익스피어는 ‘로미오와 줄리엣’을 집필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토마스 켄트가 여자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극장이 폐쇄되고 공연이 무산될 위기에 처한다. 


위대한 사람의 공백기를 상상하는 작품을 팩션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연극 '셰익스피어 인 러브'는 팩션인 영화 '셰익스피어 인 러브'를 원작으로 한다. 셰익스피어의 알려지지 않은 젊은 시절 이야기를 상상으로 채워 넣는다. 이 작품의 첫 번째 매력은 이 상상이 꽤나 개연성 있게 다가온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셰익스피어가 오롯이 혼자 '로미오와 줄리엣'을 완성하지 않는다는 것이 흥미롭다. 그에게 연극을 의뢰한 극단의 주인 헨로우나 절친이자 천재적인 작가 키트 말로우 그리고 뛰어난 배우 네드 앨린이 '로미오와 줄리엣'의 완성을 돕는다. 셰익스피어 천재성이나 비올라라는 뮤즈라는 요소로 모든 것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더 현실적이다.


이 작품의 또 다른 매력은 유머가 적절하게 녹아있다 점이다. 비극적인 사랑인 '로미오와 줄리엣'을 완성해 가지만 그것을 완성해 가는 셰익스피어의 모습은 유쾌하다. 항상 유머를 잃지 않고, 다양한 캐릭터들이 관객을 웃기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오직 단 한 사람 비올라만은 유머 대신 진지함과 사랑스러운 매력을 보여준다. '로미오와 줄리엣'이라는 전설적인 비극을 둘러 싸고 있는 외피가 희극이라는 것이 흥미롭다.


여기에 더해 문화 예술에 대한 차별과 여성에 대한 차별도 이 작품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모든 예술은 인정 투쟁을 겪는다. 셰익스피어의 시대에 연극이 그런 존재였다. 연극이랑 음란하고 부도덕한 것으로 취급 받았으며, 탄압의 대상이었다. 차별받고 있는 연극 분야에서도 차별받는 것은 여성이었다. 여성은 오직 결혼의 대상으로서만 의미가 있으며, 여성의 의사와 상관 없이 지참금과 함께 물건처럼 취급 받는 현실이 그려져 있다. 비올라의 경우 돈이 많은 상인의 딸이었음에도 매매혼으로 팔려나간다.


셰익스피어는 비올라와 사랑이 이뤄지지 않을 것임을 직감하고 '로미오와 줄리엣'의 결말을 비극으로 바꾼다. 셰익스피어는 로미오처럼 죽음을 택하지 않고, 비올라를 미국으로 보낸 뒤에 5대 희극 중 하나인 '십이야'를 집필한다. 이 결말 역시도 산뜻하다. 역사적인 사실에서 벗어나지 않으면서 상상할 수 있는 최선이라는 생각이든다.


'세익스피어 인 러브'는 사랑을 중심으로 1500년대 영국이라는 시대적 배경과 당시의 문화 상황과 불합리한 차별 등을 훌륭하게 녹여냈다. 그리고 그것들을 유머라는 윤활유가 매끄럽게 이어주고 있다.


연극이기 때문에 배우들의 연기에 대해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멀티캐스팅이 기본인 상황에서 같은 대본도 어떤 배우가 연기하는지에 따라 확실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내가 본 회차에서 셰익스피어는 정문성, 비올라는 김유정, 페니맨은 송영규, 웨섹스 경은 김도빈 배우가 맡았다. 멀티캐스팅인 배우들을 비롯해 모든 배우들의 연기가 특별히 거슬리거나 어색한 점은 전혀 없었다. 대부분의 장면에 등장하는 세익스피어 역의 정문성은 2시간 넘는 시간동안 지치는 모습을 전혀 볼 수 없었다.


첫 연극 무대 도전이라는 김유정도 퍼펙트했다. 발성이나 발음에서 흠 잡을 곳이 없었으며, 실수도 눈에 띄지 않았다. 여러 드라마와 영화에 출연하며 오랜 기간 인정을 받고 주연을 맡아 온 만큼 무대 위에서도 편안해 보였다. 때때로 어색한 지점들은 시대극의 특성상 피할 수 없는 부분처럼 보여 충분히 이해가 됐다.


'세익스피어 인 러브'는 2시간이 훌쩍 넘는 긴 러닝타임을 가진 작품이다. 그 긴 시간을 몰입하게 만든다는 것 만으로도 볼만한 가치는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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