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든다는 것은 세상의 수많은 슬픔들을 조금씩 더 많이 이해한다는 것이다. 슬픔을 이해하고 기억을 잃어간다. 다들 그렇게 감정적인 노인으로 죽음을 향해 조금씩 걸어간다. 아무도 찾지 않고 아무도 원하지 않지만 세상에 존재하는 슬픔이 '원미동 사람들'에 녹아있다.
'원미동 사람들'은 경기도 부천시 원미동이라는 삶의 공간을 무대로 80년대 소시민들의 삶을 압축해서 보여준 연작소설집이다. 11편의 소설 중에 내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불씨'와 '한 마리의 나그네 쥐'다. '불씨'는 직장에서 해고돼서 모조품 판매 외판원으로 전락한 진만이 아버지의 이야기다. 진만이 아버지는 자존심과 처 자식을 부양해야 한다는 의무 속에서 끊임없이 갈등하고 괴로워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처자식을 부양하지 못하는 가장은 비난의 대상이 된다. 결국 그는 자신을 버린다. 떨어지지 않는 입을 열어 모조품 판매 영업에 성공한다. 하지만 진만의 모조품을 사는 사람은 날품팔이를 하는 짐꾼이다.
'원미동 사람들'의 잔인한 점은 약자와 약자가 다투는 상황을 집요하게 묘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불씨'에서 진만의 아버지가 물건을 파는 사람은 아파트에 사는 사모님이 아니라 힘겹게 하루를 버티는 짐꾼이다. 짐꾼은 어려운 상황에서 안동권 씨 종가이기 때문에 제사를 위해서 진만의 아버지가 파는 촛대를 사려고 한다. 그럼에도 진만이의 아버지는 원미동에서도 버티지 못한다.
'일용할 양식'에서도 싱싱 청과물과 김포 상회와 형제 슈퍼의 이전투구가 펼쳐진다. 세 가게의 처절하지만 냉정한 다툼은 슬픔을 불러일으킨다. 같이 산다는 선택지는 없이 먹고살아야 하기 때문에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잔악한 마음이 가슴 아프다.
'한 마리의 나그네 쥐'의 한 사내는 자본주의라는 냉혹한 시스템에서 버티지 못한 사람이다. 그 사내가 폭발하는 공간은 바로 지하철이다. '발 디딜 틈 없는 전철 안은 아무리 보아도 짐승들을 가두어 넣은 강철 상자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 속에 감추어진 수성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라고 지하철의 풍경을 묘사한다. 그는 수성 즉 짐승의 본능을 폭발시켜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굴레를 벗어던지고 방황한다. 이 사내의 모습이 슬픈 것은 그 모습이 해방이나 즐거워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사내가 버린 가정에서도 그를 기다리느라 불행하다. 결국 가해자는 없이 피해자들만 생겨난다.
나라고 진만이 아버지나 나그네쥐가 된 사내와 다를 것이 있을까. 다만 먹고사는 것 때문에 엄청난 희생을 하고 있지 않고, 나보다 더 약자를 배려하는 삶을 살 수 있다는 정도다. 근본적으로 먹고살아야 하니까에 기대서 무언가를 내다 버리면서 버티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원미동을 멀고도 아름다운 동네라고 번역한다. 하지만 나는 멀어서 아름다운 동네처럼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