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란 존재가 가을을 맞다

가을 하늘처럼 자비로울까

by 루나

오늘이 추분이다. 낮의 길이와 밤의 길이가 같아지는 절기라고 한다. 태양 황경이 180도의 추분점에 이르러서라고 한다. 나지막이 들리는 운동장 말소리, 이따금씩 지나가는 버스 엔진 소리, 하늘은 푸르기만 하다. 오늘 내가 맞는 가을도 참으로 반갑다. 반팔 옷을 넣고 긴 팔, 긴바지를 꺼내는 시즌이다. 날씨가 더 이상 불쾌하지 않고 사람들도 날씨 따라 가는지 짜증이 옅어진다. 그래서인지 나는 앉아서 글을 쓰고 있다. 기분 좋은 절기에 접어든 지금. 일 년이 이렇게 가고 있구나. 허접한 일상들이 다시금 의미를 갖게 되는 시간이다. 하루도 그냥 주어진 시간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얼마나 간절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목표한 것을 쥐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일상 속에서 묻어져 나는 향기를 모른 채 지나간다. 내가 갈구했던 것들. 나는 무엇을 갈구했는지 잊어버린다. 지금 또 갈구하고 있는 그 무언가에 사로잡힌다. 흔들린다. 하나씩 성취가 생길 때마다 생활 반경이 바뀌기도 한다. 만나는 사람도 그렇다. 그렇게 또 나는 변한다. 그리고 변하지 못하는 것들에 미련을 두곤 한다. 한 번씩 숨이 찰 때마다 복부에서 느껴지는 불쾌감을 가진 지 오래다. 지방이 쌓인 건지 호흡의 문제인 건지. 짧게 염려하고 깊게 나를 연구하지 않는다. 나를 돌봐주지 않는다. 따라가지 못하는 몸을 탓하곤 한다. 아직까지 별 탈 없이 지내온 것에 감사하는데도 말이다. 구급차에 몸이 실려본 적이 없이 살아온 거면 건강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안 겪어봤던 질병들이 하나 둘 생길 때면 낯설다. 청천벽력과 같았던 말들이 이제는 무뎌진다. 함께 살아가는 것처럼. 하지만 이만큼 건강할 수 있음이 감사하다.

하고 싶은 것이 많았다. 어디서부터 건드려야 할지 몰라서. 아니면 용기를 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이렇게 자기 합리화를 하면서 산 것 같다. 이 길이 그나마 낫다고. 나의 그릇대로 살아가는 것 같다. 하염없이 갈등이 일어날 때면 바람을 세러 간다. 한강이든지 아파트 단지든지 하염없이 걷는다. 그리고 좋아하는 커피를 마시곤 한다. 한적한 마음의 방을 만들고 나면 일상으로 돌아가곤 했다. 두서없이 사는 것 같아도 늘 질서 안에서 살아갔나 보다. 돌아가기 위해 나를 달래는 느낌이었달까.

내가 쏜 공에 맞기도 하고 내가 채운 덫에 걸리기도 한다. 뭔가를 해내려고 했던 일들이 개고생으로 다가올 때도 있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 이런 걸까. 어느 때는 조금 더 공들이고 어느 때는 조금 더 힘을 빼기도 한다. 갈등의 폭을 줄여나간다. 예상치 못한 일들이 생기지 않도록 예비한다. 재미없어 보이던 어른들의 삶이 이런 것이었을까. 재미있고 싶어도 덜 흥분하고 슬프고 싶어도 웃어넘기며 일상을 살아갔던 어른들. 내가 어른의 나이지만, 여전히 어른의 모습에 와닿았는지 점검하게 되고 바뀐 부분이 있을 때는 신기하기까지 하다. 도전과 모험을 즐겼던 20대, 뭐든지 넘어보고 싶었던 30대를 지나서 차분히 나를 돌아보고 곱씹어 보는 40대가 된 것이 좋다. 치열했던 옛날로 돌아가지 않아도 좋다. 지금 이 가을이 나에게 이런 느낌이어서 좋다. 나에게 덤비지도 않고 뭘 빼내가지도 않을 것 같은 잔잔한 이 쌀쌀함과 쓸데없이 높은 하늘을 보며 멍 때릴 수 있는 이 시간. 나란 존재가 살아서 온몸으로 가을을 느낄 수 있다. 오늘도 과하게 버텨내지 않아도 된다. 몸과 마음이 쉴 곳을 찾아가는 이 느낌이 가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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