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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지개물고기 Apr 02. 2024

집요함을 사랑이라고 불러도 될까

교실 이야기

초등교사의 덕목 중 하나는 집요함인데

성격상 집요하지 않아도 집요해야만 하는 순간들이 있다.

사소하게는 숙제를 걷을 때나, 

잘못된 습관을 고쳐주고 싶을 때와 같은.

아동학대 이슈로 인해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도 

소송당할 위험에 처한 씁쓸한 현실이지만

그래도 애정이 있어서

잔소리를 하고

집요하게 굴 때가 종종, 아니 많이 있다.


2학년 담임을 할 때 책상서랍엔 책이 뒤섞여있고

수업시간엔 해당 교과서를 바로 꺼내지 않으며

어머님이 챙겨주신 연필은 며칠 만에 어디론가 사라지고

욱하는 성격 덕에 곧잘 폭발하던 재민이.

청소함에 들어가기도 하고

교과서에 적으라는 것들은

당연히 잘 적지 않았다.

잔소리와 어르기와, 공감과 반 협박의 그 어디쯤에서

오가며 그렇게 2학년을 보냈다. 


그 재민이가 6학년이 되었을 때

나는 6학년 영어를 가르치게 되었는데

재민이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수업시간의 눈빛도, 자세도 좋아졌고

반에서 회장도 되었다. 

당시에도 책은 많이 읽었는데

그래서인지 아는 것도 많았다. 

재민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너는 크고 있던 중이었구나.

완성형이 아니었구나.


6학년 담임을 할 때

내가 가장 이름을 많이 불렀던 수혁이는

내야할 것들은 제일 마지막에 내거나

내지 않았다. 

수행평가라고 하는 것들도

글씨를 알아볼 수 없도록 대충이었고

내가 무슨 말을 해도 무심했다. 

말하는 것들도 대충 흘려들어

지적할 일이 많았다. 

수혁아~라는 이름을 참 많이도 불렀다.

칭찬도 했다가

공감도 했다가

협박도 했다가

버럭도 했다가

그런 한 해를 보냈던 것 같다. 


그런 수혁이가 졸업하고 어느 날 

가나 초콜릿 하나를 들고 교실로 찾아왔는데

수혁이는 커진 키만큼이나 눈빛부터 예전과는 달랐다. 

그 뒤로도 가끔씩 무뚝뚝한 대화지만 나의 안부를 묻는다.

중학생 남자아이의 그 짧은 안부문자에 담긴 마음이 

따뜻하고 묵직하게 느껴지곤 한다. 

교사가 되어 좋은 점은

"사람은 안 변해"의 틀을 깰 수 있는 것이다. 

사람은 안 변한다는 명제에 동의하지만

아이들은 자라고 있고 분명 조금씩 변하고 있다. 

물론 예외는 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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