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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 친구 아니야

열한 살에게도 최대 난제는 인간관계

by 무지개물고기

우리 반에 수영이와 혜진이의 관계는 최대 미스터리다.

불같이 싸우면서도 동시에 불같이 사랑하고 헤어지지 못하는 연인관계가 있다는데

이 둘의 관계가 그렇다.

서로에게 가시 돋친 말을 하고 혜진이는 돌아서면 수영이의 험담을 하고 일 년 중 교실 내 벌어진 갈등의 8할 이상을 차지할 만큼 나를 비롯해 우리 반의 피로도를 높여준 아이들이다.

둘이 안 맞으면 친하게 지낼 필요가 없다고 몇 번을 말해주어도 변함없이 싸웠다 붙어 다니고 또 싸우기를 반복하여 보는 사람이 오히려 질릴 지경이었다.

절교선언이니 계약이니 하는 단어들도 오가기를 여러 번.

혜진이는 우리 반 그리고 다른 반 아이들에게까지 수영이의 험담을 하곤 했다.

수영이는 혜진이가 그런 걸 알면서도 관계를 이어간다.

수영이가 혜진이에게 편의점과 다이소 등에서 상당한 금액에 달하는 물건이나 간식거리들을 사주었다는 아이들의 제보도 있었다.

그리고 혜진이가 절교하자고 하면 수영이는 지금껏 사줬던 금액만큼 갚으라고 협박을 했다고도 한다.


1년 동안 지켜보고 학년 말을 앞둔 지금 나는 아이들 앞에서 말했다.

"수영이랑 혜진이. 너네 친구 아니야. 그런 관계에 '친구'라는 가치 있는 단어를 붙이지 않았으면 좋겠어. 친구는 동등한 관계야. 마음을 나누고 같이 있으면 편안해지는 사람. 너희는 함께 있으면 서로가 힘들어지는 관계야. 그리고 혜진이, 네가 더 나쁜 거야. 아무리 친구라도 그 큰 금액을 일방적으로 사주는데 그걸 다 받기만 한 거잖아. 그래서 친구 관계도 못 끊는 거잖아. 그리고 뒤에서 수영이에 대한 안 좋은 이야기하고. 사람 마음 그렇게 이용하는 거 아니야. 그렇다고 혜진이 네가 나쁜 사람이라는 건 아니야. 그건 너의 일부 모습이니까. 어른들은 변하기 힘들지만 너흰 아직 자라는 중이니까 얼마든지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어. 선생님은 이제 곧 헤어질 거고 모른 척하면 그만이야. 그런데 잘못된 건 잘못됐다고 말해주는 어른이 한 명은 있어야 하잖아? 너희는 5학년 가서 서로 아는 척하지도 말고 각자 ‘진짜'친구를 사귀면 좋겠어. "


왜 어떤 사람들은 자신을 초라하고 불행하게 만드는 사람을 친구로, 연인으로 삼는 걸까.

그게 무의미한 집착이란 걸 주변 사람들은 다 알아차려도 정작 본인은 알아차리지 못하는 걸까.

이 관계에서 나는 두 아이 모두 안타깝다.

나를 비롯한 반 아이들 모두가 의아해한다.

대체 수영이와 혜진이는 왜 저렇게 매일 싸우면서도 또 서로에게 집착하는 건지.

수영이는 애정결핍에 자존감이 낮고 혜진이는 약간 영악하고 자의식 과잉이다.

혜진이에게 집착하는 수영이의 마음을 혜진이도 티 나지 않게 즐기고 이용한다.

두 아이들에게 꼭 말해주고 싶었다.

'친구'라는 단어의 무게와 가치를.

둘의 관계는 서로를 불행하게 하고 아프게 하는 건강하지 않은 관계라는 것을.


나는 내향형 인간이며 학창 시절 친구들을 사귀고 이어가는 것을 잘하지 못했다.

그리고 지금도 혼자 있는 시간이 가장 좋은 자발적 은둔형 외톨이에 가깝다.

하지만 '친구'라는 따뜻하고 소중하고 빛나는 단어를 이상한관계에 사용하는 걸 보면 참을 수가 없다.


수영아, 혜진아

그거 '친구'아니야.

앞으로는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고 서로의 가치를 높여주는 그런 친구를 사귀길 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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