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 이야기
올해 2학년이 되는 둘째는 꼭 자기 전에 이야기를 들려 달라고 한다. 전에는 책을 읽어주곤 했었는데 읽기 독립이 되면서 그냥 옆에서 재워주기만 하려고 했더니 이야기를 즉석에서 만들어서 해달라는 것이다. 누워서 책을 들고 읽어주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얼른 아이를 재우고 나도 자거나 자유시간을 가지고 싶은 마음 상태로 이야기 창작은 더 어려운 일이었다. "그냥 자자"라는 말에도 굴하지 않고 이야기를 해달라는 성화에 못 이겨 이야기를 시작하면 요구가 더 이어진다. 앞뒤 문맥이 안 맞거나 이야기의 흐름이 이상하면 지적이 들어온다. 긴장감과 흥미를 유발하는 서두는 필수다.
어젯밤에도 역시 평소와 같은 상황이었다. 그런데 둘째가 이렇게 말한다. "엄마, 너무 평화롭고 행복하기만 한 이야기는 싫어. 악당이 나오거나 뭔가 불행한 일이 있어야 해." 그리고 덧붙인다. "그런데 작은 불행이어야 해. 큰 불행은 싫어. 원래 그렇잖아. 작은 불행들이 생기고, 또 생겨나."
너무 평화롭고 행복하기만 한 건 싫고, 주인공이 난관에 부딪히거나 불행을 겪는데 그 불행이 아주 큰 불행은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아이의 주문에 속으로 감탄사가 나왔다. 아니 인생 2회 차인가. 모든 이야기와 영화, 드라마가 그렇듯 처음부터 끝까지 평화롭고 행복한 경우는 없다. 그렇다고 한다면 재미가 없다. 이 플롯을 실제 인생에 적용시켜 보아도 그렇다. 출생부터 사망까지 줄곧 평탄하기만 한 인생이 있다고 가정하자. 그 인생을 책이나 영화로 만든다면 그 책과 영화를 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루에도 희로애락을 비롯해 여러 감정을 느끼고 가끔 작은 불행들이 찾아온다. 물론 현실은 만만한 상대가 아니라서 언제나 감당가능한 작은 불행만 찾아오지는 않는다. 결코 극복하지 못할 것 같은 큰 불행도 초대하지 않은 손님처럼 찾아온다.
두 아들에게 작은 불행만 찾아오기를 바라는 건 엄마의 이기심이자 지나친 바람일까? 악당을 물리치는 히어로물을 좋아하고, 이야기지만 그저 평화로운 플롯은 재미가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둘째에게 유치하지만 작은 불행이 담긴 이야기를 들려준다. 스르르 잠이 든다. 아이도 나도, 꿈속에선 어떤 불행을 극복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