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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소개서

일상 에세이

by 무지개물고기

크게 들뜨지 않는 하루를 생각한다.

크게 실망하지도 크게 놀랄 일도 없는 하루.

나는 그런 하루를 좋아한다.

살짝 입꼬리가 올라갈 정도의 사소한 운 몇 개가 주어진 하루.

잰걸음으로 어딘가에 빨리 닿지 않아도 되는, 그저 걸음이 걸음으로 존재하는 날.

어쩌면 오래 기다렸는지도 모른다.

누군가를 제친 것으로 기쁨을 얻지 않는 것, 사람들 속에 던져지지 않는 것, 분초를 다투는 불안과 싸우지 않는 것.


여러 번 곱씹을수록 좋아지는 잘 빚어진 문장 같은 것이 부러웠다.

정확히는 마치 원래부터 존재해야만 했던 문장을 날카롭게 다듬어내는 그런 사람을 부러워하고, 질투하고, 이내 인정해 버린다. 내가 갖지 못한 모든 것들을 인정하듯이.

평온한 일상이란, 얼마나 많은 허들을 넘어야 겨우 얻어지는 것인지 평온한 일상을 가지고 난 후에야 알았다.

그런 일상은 보이지 않고, 잡히지 않지만 사라지고 난 후에야 뚜렷해진다.


물과 기름처럼, 언제나 나는 잘 섞이지 않는 물질이다.

세계로부터, 사람으로부터, 나 자신으로부터.

완전히 용해되지 않아서 어딘가 부유하는 느낌으로 존재한다.

빗소리를 들으며 낮잠을 자고, 무성한 초록을 바라보고, 소설책을 읽고, 모든 소음이 사라진 고요 속에서 딸깍 캔맥주를 따는 그런 찰나의 순간에 완전한 행복을 음미한다. 소실점의 개수가 늘어난다. 하나, 두 개, 세 개. 하지만 그렇게 많이는 아닌. 너무 큰 불행이 싫어서 너무 큰 행복도 사양하는 소심한 마음으로. 금도끼를 덥석 받아 들었을 때 치를 대가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그런 마음은 작은 마음일 테지만 모든 사람이 큰 마음을 가질 수는 없다는 핑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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