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패션의 시작은 고속터미널, 강남역 지하상가에서

과유불급

by 무지개물고기

고등학교를 졸업 후 교복을 벗어던지고 본격적으로 대학 새내기로서 마땅히 패션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대학 때 과외 알바를 하긴 했지만 아주 많이 뛰지는 않았기에 용돈은 한정되어 있었고 나름의 사회생활을 하며 외식도 해야 했으므로 옷에 쓸 수 있는 액수 또한 한정되었다. 그 당시 학교와 가까우면서도 저렴한 가격에 다양한 옷을 파는 곳이 있었는데 그곳은 강남역과 고속터미널역 지하상가였다. 놀라운 것은 최근에 가도 앞에 만원, 만오천 원짜리 옷들을 판다는 것이었다. 06~09년도에 만원, 만오천 원과 지금의 그 돈의 가치는 다를 텐데 여전히 그 가격의 옷들을 판다는 것이 정겹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나의 대학시절 초창기 패션은 그야말로 강강강이었다. 연보라색 스타킹을 신거나, 초록바지에 빨간 캡모자를 쓰는 등이었다. 패션은 과해서는 안되고 패션의 완성은 다 장착한 후에 하나를 빼는 것으로 이루어진다거나 하나를 살리면(포인트를 주면) 나머지는 다 죽이라는(무난하게 가라는) 기본 원칙조차 지키지 못한 시기였다. 꾸미고자 하는 욕심이 과했던 결과였다.


하지만 욕심이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그 욕심 덕에 강남역과 고속터미널 지하상가를 방앗간 삼아 드나들며 실험적으로 패션을 시도했고 십수 년이 지난 지금은 옷을 잘 입는다는 주변의 평가도 종종 듣는다. 이제는 투머치하지도 않으며 하나하나에 힘을 주려 하지도 않는다. 나는 여기서 또 인생의 교훈을 얻었다. 뭐라도 처음엔 어설프더라도 시작하고, 실험하고 그 시간이 쌓인다면 더 나아질 수 있다는 뻔한 교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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