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 에세이
나는 순응적인 아이였다.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부모님과 선생님의 지시에 잘 따르며
반항도 해보지 못한 아이였다.
순응적인 아이는 어른들 입장에서 굉장히
다루기 편한 아이다.
나는 사춘기를 사춘기답게 보내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엄마에게 짜증도 내고
방문도 쿵 닫아보고
감정기복이 가족에게
그대로 전해지는 그런 모습은
언감생심이었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편한 사람에게 가장 날것의 감정을
드러낸다.
엄마나 남편, 배우자나 자녀 앞에서는 사회적 가면이나
체면을 벗어버리기 쉽기 때문일 것이다.
남들에게는 보여주기 싫은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반대로 부모님이 안전지대가 아닐 경우엔
함부로 날것의 감정을 드러낼 수 없다.
누울 자리보고 다리 뻗는다라는 말이 있다.
나는 아이들이 거절을 하고 싫은 감정을 표현할 때
반가운 마음이 든다.
엄마는 아이들이 좋고 싫은 감정들을 편안하게
드러낼 수 있는 존재라고 믿기에 가능한 일이니 말이다.
물론 나도 인간이기에 순간적으로 짜증이 날 때도 있다.
하지만 나는 '고분고분'하게 키우지 않는 것이 목표이다.
고분고분한 아이는 자라서 자신의 감정도 모르고
남들이 화낼 일은 하지 않느라 눈치를 보는 사람이
될지도 모른다.
모두가 예스라고 답할 때 노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
모두가 노라고 답할 때 예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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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구와 같은 사람으로 자랐으면 좋겠다.
당연한 걸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남들과는 다른 엉뚱한 생각을 하고
시도해 보는 사람이야말로
미래 시대의 인재가 아닐까?
내가 무언가 요구할 때
아이들은 나에게 이유를 묻기도 한다.
나 또한 아이들이 뭔가를 요청할 때 이유를 묻는다.
그리고 서로에게 이유가 타당하면 받아들인다.
물론 기질적으로 순응적인 아이들이 있다.
기질과 상관없이 그저 순응적인 아이로 키우고 있지는
않은지 한번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혼날까 봐 사랑받지 못할까 봐
감정을 드러내지 못하는 건 아닌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