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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은 Oct 08. 2020

나는 꽤나 승진이 하고 싶었다

홍대의 분위기 좋은 한 카페에서 신간 에세이의 북콘서트를 하던 날이었다. 감성 짙은 사진과 글로 두터운 팬 층을 가진 인기 작가의 신간이었다. 화기애애했던 작가와의 만남과 인디밴드의 멋진 공연까지 너무나 완벽했던 아름다운 시간이었다. 작가와의 행사를 진행할 때마다 잘 마무리 할 수 있을지 긴장되면서도 한편으로는 매번 설렌다. 학생 때 종종 관객으로 참여하던 이벤트들을 이제는 내가 직접 기획하고 만들어 가고 있다는 생각에, 꿈을 이룬 것 같고, 감동스럽고 잘 살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그날도 즐겁게 두 시간 여의 콘서트를 무사히 마무리하고, 지하철역으로 걸어가며 확인한 회사공지. 그날 난 대리로 승진했다. 더할나위 없이 완벽한 금요일 밤이었다. 허약하고 별 볼일 없던 삶이 ‘대리’라는 직급 하나에, 드디어 레벨 업 한 듯 신나고 뿌듯했다. 단지, 연차가 차서 받은 직급이라 할지라도. 대학교를 다니며 내내 출판사에서 일하고 싶었고, 다른 직업을 생각해 본적도 없었기에 앞으로 과장도 되고, 부장도 해먹으며, 멋진 마케팅 팀장이 되어 팀을 이끌고 싶었다. 경력과 직급을 통해 이만큼 내 인생에 성과를 내고 있다고 증명하고 싶었다. 이만큼 잘 살고 있다고 검사받고 싶었다. 내 자신과 가족들과 타인들로부터. 그 시절 나는 꽤나 승진이 하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결혼과 함께 대리 2년차에 호주로 왔다. 정장입고 사무실에서 일하다가, 하루 종일 서서 몸으로 일하려니 체력만큼이나 정신도 지쳐갔다. 한국에서야 문화산업과 관련된 동종업계 사람들을 만나는 게 전부였다. 반면, 호주에서는 일하면서 전 세계 사람들을 만나고 가끔 위협적인 손님 때문에 경찰까지 불러야 할 경우도 있었다. 그렇게 마음에도 없는 일로 먹고 살려다 보니, 자연히 출판사에서 근무하던 생각이 많이 났다. 좋아하는 책을 만들고, 존경하는 작가들도 많이 만나고, 매년 연봉도 오르고, 인센티브도 꼬박꼬박 받던 생활이 그리웠다. 게다가 한국에서 세웠던 비자 계획이 어긋나며 고민스러울 때, 대표님과 팀장님으로부터 러브콜까지 받았으니, 호주에서 하는 일 정도는 미련 없이 때려치우고 짐 싸고 싶었다. 혼자 온 거라면 바로 귀국편 비행기에 올랐겠지만, 나에게는 딸린 남편이 있었고, 함께 도전하기로 한 일을 계속 하기로 했다. 이민 간다고 떵떵거리고 작별인사를 다 하고 왓으니 1년도 안 되서 지금 당장 힘들다고 돌아가기는 민망스러운 일이었다(사실, 나는 이때 돌아가지 않은 걸 4년 넘게 두고두고 후회했다.). 



명함의 이름보다 직급에 더 뿌듯하던 그 시절은 어디가고, 지금은 그저 파트타임 근로자로 만족한다. 호주에 와서 남편은 이민을 위해 학교를 갔지만, 나는 선물가게, 스시 가게 등 홀 서버나 세일즈 일을 주로 했다. 세일즈 일은 생각보다 감정소모가 엄청났다. 이야기 하는 걸 좋아하고, 작은 일에도 땡큐라는 말을  습관처럼 하는 호주 문화라 현지인들과 이런저런 스몰 토크를 나누는 시간이 즐거울 때도 있다. 하지만, 억지스러운 불만과 불평을 고스란히 받아내다 보면 ‘스트레스’라는 속말이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톡톡 튀어 나오곤 했다. 가게가 커져서 한동안 매니저가 되었을 때, 책임과 함께 스트레스도 커져갔다. 한국에서는 그렇게 갖고 싶던 직급이 호주에 와서는 웃돈을 줘도 별로 내키지 않는 자리가 됐다. 


한국에서 나는 일이 곧 내 삶이고 정체성이었다. 주말에 작가 만남이나 사인회 행사를 진행하고, 퇴근 후에 서점을 둘러보고, 작가와의 회식도 당연히 해야 할 일었다. 몸은 퇴근했지만, 정신은 일주일 내내 업무를 계속하고 있었다. 주말에 미용실에 머리를 하러 가서도 담당 헤어드레서에게 신간 홍보를 했고, 방송에 자사 책이 나오기라도 하면 바로 SNS 홍보를 했다. 이 모든 게 내가 좋아하는 일이었기에 가능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그 일을 얼마나 순수하게 즐겼던 걸까. 


얼마 전 오래된 메일함 정리를 하다가 출판사에서 일한 5년 동안 많은 선배, 후임들과 나누었던 업무적, 사적 메일들을 읽게 됐다. 보통 사내 메일을 주로 썼지만, 종종 예외도 있었다. 그리고 한국에서 더없이 즐기면서 일했다고 생각했던 시간들 속에서 내가 얼마나 성과를 위해 고민하고 동동거리며 지냈는지를 발견했다. 지나고 나면 아름다운 것만 기억난다고, 출근길에 얼마나 지쳐있었는지, 상사가 비교하는 말에 상처받았었는지, 동료에 대한 부당한 대우에 묵묵히 내 자리만 지켰었는지 생각이 났다. 나는 지금의 현실로부터 도피하고자 과거 속의 즐거웠던 때만을 추억하고 있던 것이다. 


한국에서 승진을 바라던 나도, 호주에서 스트레스로 괴로워하던 나도 이제 일에 연연하지 않는다. 내 직업이 더 이상 내 일상을 파고들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마음에 들든 마음에 들지 않든 단지 내 인생 어느 시점에 잠시 입고 있다가 갈아입을 옷일 뿐이다. 그 옷은 남들이 멋지다고 여기는 비싼 정장이 될 수도 있고, 무릎 늘어난 싸구려 레깅스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남들이 보는 그깠 옷쯤이 무슨 대수랴. 어떤 옷을 입었을 때 진짜 나답고 편한지를 이제야 찾았는데. 


퇴근 후, 밖에서 입었던 옷과 함께 세일즈 퍼슨sales person으로서의 나도 한쪽에 잘 접어두고, 편안한 파자마로 갈아 입었다. 어제 읽다만 장강명 작가의 <책, 이게 뭐라고>를 마저 읽고 나서 오랜만에 유튜브 콘텐츠 계획도 해볼 예정이다. 이제는 남들에게 보여지는 직함의 승진보다, 퇴근 후 오롯이 내 시간을 즐길 수 있는 여유가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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