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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은 Oct 10. 2020

호주 이민과 파이어(FIRE)족

은퇴 대신 이민을 선택했지만, 40대 조기 은퇴를 꿈꾸는 지금

퇴근 후 저녁을 차려놓고 여느 때처럼 아이패드로 유튜브를 틀었다. ‘30대 은퇴 노리는 미국 FIRE족 실제 상황’이라는 추천영상이 눈에 띄었고, 한 30분 동안 남편과 밥상토론을 하며 재밌게 봤다.      


우리가 본 방송은 김난도 교수와 조승연 작가, 가수 에릭 남이 뉴욕에서 밀레니얼 세대들을 만나 이전 세대와는 달라진 그들의 라이프 스타일을 알아본 tvN의 <트렌드 로드 뉴욕>이라는 방송의 일부였다. 밀레니얼 세대가 생각하는 행복, 공유 경제, 환경 등 다양한 가치들에 대해 다루고 있었는데, 개인적으로는 돈벌이에 대한 나의 생각이 변하는 계기가 됐다.      


미국 뉴욕의 밀레니얼 세대를 중심으로 일어난 FIRE(파이어) 운동은, 경제적 자유를 뜻하는 Financial Independence와 조기 은퇴를 뜻하는 Retire Early가 합쳐져서 만들어진 신조어이다. 20대 때부터 극단적 절약을 통해 은퇴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한 뒤, 30-40대에 조기 은퇴를 하고 남은 인생은 회사에 소속됨 없이 하고 싶은 일을 하거나 여행을 다니며 즐기려는 계획이다.        


Photo by Micheile Henderson on Unsplash


한국에서 호주 이민을 고민할 때, 은퇴도 하나의 이유였다. 남자친구와 결혼과 미래에 대해 고민하며, 정년까지 일할 수 있을지, 40대, 50대에 회사에서 나오게 되면 그 이후에는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 이야기하곤 했다. 그래서 기회가 있을 때(당시 워킹홀리데이 막차였다) 기술을 배워 호주에 자리 잡으면 그게 제 2의 인생이 될 수 있을 거라 여겼다. 한국보다 높은 시급과 연봉, 기술이 있다면 비교적 나이제한이 덜한 근무 환경에, 야근과 회식 없는 사회생활, 영주권자가 받을 수 있는 정부 지원금 등을 생각하면 30대에 몇 년 투자하는 건 아깝지 않아 보였다. 1983년에 태어난 우리 부부도 밀레니얼 세대지만, 파이어 운동과는 반대로 40대 조기 은퇴를 피해 호주이민을 생각한 셈이다.      


하지만, 막상 호주에서 살다 보니 또 다른 고민을 하게 됐다. 한국에서 공대를 졸업한 남편은 호주 이민을 위해 요리 공부를 시작했고, 호주 학위가 없는 나는 일반 매장에서 세일즈 일을 했다. 그런데 한국과 달리 호주에 와서 몸으로 몇년 일하다 보니, 남편도 나도 체력이 문제였다. 나는 원래 타고난 저질 체력이었고, 호텔과 레스토랑에서 셰프로 일하던 남편도 쉬는 날에는 온종일 집에서 쉬면서 충전할 수밖에 없었다.       


언제까지 이렇게 일할 수 있을지 고민하던 때에 이 방송을 보게 되었고, 꿈같은 조기 은퇴에 대해 눈을 뜨게 된 것이다. 한 파이어족이 계산한 은퇴자금 약 12억, 낼모레 마흔인데 20대보다 더 극단적인 자린고비 생활을 해도 우리 수입으로는 10년 안에 파이어족이 되긴 불가능하다. 하고 싶어도 실현 가능성 없어 보여 ‘나도 이제 파이어족이 되겠다’고 우스갯소리하며 넘겼지만, ‘경제적 독립’에 대한 갈망이 생겨버리고 말았다. 굳이, 호주에 이민 오고 나서 이제야.       


그동안 밀레니얼 세대를 떠올릴 때 ‘파이어족’보다 익숙했던 용어는 ‘욜로’족이었다. You Only Live Once,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기보다 지금의 행복을 더 중요시 하고 소비하는 사람들. 파이어족이나 욜로족 모두 내가 속할 수 없는 방식이다. 나는 일찍 은퇴하기도 현실적으로 어렵고, 지금의 행복만을 추구하며 미래와 노후 준비에 소홀해질 수만도 없다. 하지만, ‘인생에서 즐길 수 있는 시간은 정해져 있으니, 자신만의 행복한 삶을 살아가자‘는 그들의 공통적인 메시지는 충분히 내 삶에 끼워 넣을 수 있었다.      


이후, 나는 블로그로 참새 발자국만큼의 광고 수익도 챙기고, 주식도 조금씩 배워가며 ‘세미-파이어족’ 정도로 살고 있다. 읽고 싶은 책을 사거나, 주말에 친구네 집에서 와인파티도 즐기며 욜로적인 행복도 놓치지 않는다(호주는 한국만큼 즐길 게 많이 없기도 하다). 미래는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지만, 혹시나 이런 사이드 허슬을 통해 훗날 조금 이른 은퇴를 하게 된다면, 나는 동네에 작은 책방을 하나 내고 싶다. 돈벌이를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좋아하니까 하고 싶은 일이다. 책방 한 켠에 앉아 쓰고 싶은 글도 쓰는 상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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