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은 Oct 08. 2020

겸손도 정도껏 해야지!

대학교 졸업 후 5개월만에 첫 직장에 겨우 입사한 나는 매일이 초긴장상태였다. 절대 지각하지 말아야지, 발표준비 잘해야지, 회의 준비에 실수하지 말아야지. 성실함만이 전부였던, 신입촌티 폴폴 나는 날들이었다. 정장도 어딘가 어색하고, 동료, 선배들을 대하는 모습에서도 말투나 행동들이 아직 대학생 티가 났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쓴 자사 도서의 리뷰가 하룻밤 새 많은 독자들의 공감을 얻어내 아침부터 사내 이슈가 된 적이 있다. 온라인 서점에 해당 도서의 리뷰를 올리면 공감지수를 ‘좋아요’로 표시할 수 있다. 이미 출간되서 많은 사랑을 받고 있었고 마케팅도 한참 진행된 책이었다. 따로 팀장님의 지시는 없었지만, 오후에 여유가 있어 리뷰를 작성하고 다음날 출근해보니 그 공감 수가 100을 넘어섰다. 100을 넘는다는 건 정말 이례적인 일이다. 1인당 1번을 누를 수 있는데, 수많은 리뷰 중에 1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내 글에 공감을 했다니. 말도 안돼. 입사 한참 전에 우연히 읽은 책이었고, 받은 감동 그대로 썼을 뿐인데 과연 이만큼 공감받을 내용인가 싶어 좋으면서도 어리둥절했다. 마케팅팀에서는 한번도 없던 일이라 팀장님이 기특해 하셨다. 회사 카페테리아에서 점심식사를 하는 동안 편집팀, 마케팅팀 선배들이 잘했다는 칭찬과 격려의 한마디씩을 해주었다. 거기에 나는 연신 ‘아니예요.’라는 말로 부끄러움을 대신하고 있었다. 듣다 못한 편집팀 선배가 충고를 했다. 


"겸손도 정도껏 해야지!"


지금은 아니지만, 나는 칭찬을 들을 때면 항상 ‘아니에요’라는 말부터 꺼냈다. ‘감사합니다’라는 간결하고도 적절한 표현이 있었지만, ‘겸손해야지’하는 마음이 지나쳐 ‘감사하다’는 말 마저도 내 자랑하는 것 같았다. 지나친 ‘아니에요.’가 마음을 써서 표현해준 상대에게 제대로 된 답변이 아닐 수 있겠다는 생각을 처음했다. 


누군가 잘한다고 이야기하면 스스로 운이 좋았다고 여겼다. 백일장에서 상을 받으면 더 실력 있는 학생이 이번에는 안 나왔나 보라고 생각했다. 피트니스 센터에서 트레이너가 운동 자세를 칭찬하면 으레 형식적으로 말하는 거라고 받아들였다. 내 성격이 꼬인것도 아니고, 스스로 가지고 있는 성과의 기준이 높았기 때문도 아니고, ‘잘 한다’는 격려의 말이 내가 엄청나게 뛰어나서 듣는 말도 아닌데, 나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부끄러웠다. 경험 많이 없는 내성적인 성격탓이었을 것이다. 



그 날 이후, 누군가 나에게 칭찬과 격려의 말을 해주면, 나는 더 이상 ‘아니에요’라고 에둘러 말하지 않았다. ‘운이 좋았다’고 덧붙일 망정, 먼저 ‘감사하다’ 말한다. 호주에 살고 있는 지금도 가끔 연락하는 사이이지만, 그 날 선배의 그 한마디가 참 고마웠다. 단순히 겸손에 대한 것이 아닌, 나의 조금은 주눅들고 내성적인 성격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고 성장하는 계기가 됐다. 이후 더 다듬어진 말 습관에 업무적인 자신감과 경력이 더해져 서점에 영업을 나가서는 때때로 능청스러워지기까지 했다. 지나친 겸손함에 내 실력과 자신감과 자존감을 함께 담아버리지 말자. 무엇이든 지나쳐서 좋을 건 하나 없다. 




이전 01화 나를 일으켜 세운 건, 결국 15년 전의 나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