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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토끼 Nov 17. 2017

#41 엄마의 마음

-답답한 딸의 마음

엄마는 화가 많다. 

결코 화 나게 하려는 말이 아닌데 화를 낸다. 한 번 터지면 걷잡을 수 없다. 

엄마를 이해시키려는 우리의 시도는 권위에 대한 도전이고, 마음같지 않은 자식들은  당신의 지난 세월을 허망하게 하는 원수다.

아마 엄마는 10년 전에도 이랬고, 15년 전에도 비슷했다.

스트레스를 푸는 데 도움 준다는 소주는 엄마가 과거 아픔을 회상하는 도구다.

나도 전엔 엄마가 참 불쌍하고 불행한 사람이라고 여겼다. 그때는 정말 사정이 어려웠으니까. 그런데 한결같이 자신의 아픔을 곱씹는 엄마를 볼 때면 '달리진 게 없구나' 싶다. 

"지금 죽어도 아무런 미련이 없다."

이 말은 과거엔 정말 자주 들었던 말이다. 요새는 엄마가 일을 관두고 취미생활을 즐기며 나아진 줄 알았는데 또 그 말을 들었다.

사실 나는 엄마의 그런 태도에 질려버렸다. 이런 자극에 더 이상 흔들리고 싶지 않다. 어제의 상황은 그동안의 여러 갈등에 비하면 아주 미약한 수준이다. 

평소 우리 엄마는 이치에 맞고 성격이 쾌할한 사람. 그런데 이렇게 때때로 본인의 스트레스와 마음에 묻어둔 20% 정도의 부정적인 마음, 과거의 상처가 한 데 뭉치면 파괴력을 갖는다.

본인이 얼마나 불행한 지를 주장할 때 엄마는 정말 불행하다. 고등학교 때 부모님이 돌아가셨고, 졸업 후 바로 외지에서 일하며 동생들의 학비를 지원했다. 아빠와 결혼하고 초반에는 시집살이까지 했다. 애가 셋이라 경제적으로는 늘 빠듯했다.

그래도 이제 나는 불행을 주장하는 엄마를 더 이상 어떻게 대해야 할 지 모르겠다. 

동생이 그랬다. 엄마는 스스로의 상처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 같다고. 언니도 그렇지 않았느냐고, 아무리 자신이 이야기를 해도 듣지 않고 상처를 곱씹지 않았느냐고. 어떻게 극복한 것인지 물었다.

나는 답은 자존감이었다고 말했다. 자존감이 바로 서며 움츠리고, 갇혀있던 스스로를 걷어낼 수 있었다고. 아무리 ‘우울증 극복’을 검색해도, 위로를 받아도 빠져나올 수 없었다. 내 안에 쌓여있던 불필요한 것들을 걷어내고 마음이 가는대로 행동하니 점점 살만해졌다.

실은 우리 삼남매는 부모님께 못 하는 편은 아니다. 어느 집보다 가족이 자주 붙어있는다. 계절이 지날 때마다 필요한 것을 선물하고, 함께 살면서도 수시로 연락하고 살갑게 군다. 평소에는 가족 모두가 그렇게 친구같이 정겹다. 

그래서 이렇게 꼬여버린 상황을 맞이할 때면 당황스럽고 트라우마가 될 것만 같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엄마도 자존감을 바로 세울 기회를 만나야 하는 걸까.  내가 엄마가 된다면 이해할 수 있을까. 고민이 깊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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