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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토끼 Jan 11. 2018

#48 여자로 사는 것.

-결혼을 한 달 남짓 앞두고

엄마는 '남자는 원래 그렇다'고 했다. 배려를 담은 세심한 챙김이 없어도 원래 그런 것. 함께 결혼식을 올리기로 한 예비 신랑이 결혼 준비를 내게 다 미룰 때도 어쩔 수 없는 것.

“일이 힘들잖니. 바쁘지 않은 사람이 하면 되는 거야.”

알고 보니 그들은 그저 '바깥생활'만 잘 하면 모두 괜찮은 존재들이었다. 적어도 엄마에겐 그랬다. 그리고 그런 그들에게 학습되지 않은 역할을 강요하며 마음을 불편하게 하지 않는 것 또한 여자들의 역할이었다. 나는 어른들의 조언에 따라 그 학습된 역할을 해내면 될 일이었다.

“시어른을 만날 때는 옷을 단정하게 입고, 잘 웃고 싹싹하게 굴어야 한다.”

그런 나의 할 일을 잘 아는 편이었지만 늘 꼬인 속은 그 역할에 최선을 다하지 않게 했다. 오히려 마음에 벽을 만들었다.

여자로 사는 것은 즐거우면서도 피곤했고, 일종의 트라우마를 갖게 했다. 특히 외모에 있어서도. 여자는 늘 일정 수준 이상의 미모를 유지해야 하고 그렇지 못할 때는 좋지 않은 소리를 들어도 자기 노력의 부족으로 여겨진다. 심지어 같은 여자들마저 그것을 자기관리라고 말한다.

그런데 외모에 신경 쓰는 모습이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어느 날 화장이나 옷차림을 평소보다 신경 썼더니 아빠는 내게 “누굴 꼬시러 가느냐”라고 말했다. 종종 짓궂은 남자아이 같은 말투로 성차별적 발언을 하는 우리 아빠. 여기서 밝히건대 나는 누군가를 꼬시려 한 적이 없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드러냈을 뿐이고, 상대가 나와 맞는지를 가늠하며 관계를 시작했을 뿐이다.

러나 남자들은 내가 꼬리를 친다느니, 꼬신다느니 하며 떠들어대곤 했다. 진짜 진상은 내가 대학교 때 만난 ‘마초 개념남’들이다. 모두를 지칭하는 것은 아니지만 몇몇 기억에 남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과의 대학생활은 내게 트라우마가 됐다. 그때는 지금보다도 여성편력이나 여성에 대한 발언이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여지는 때였다. 시기를 잘 타고난 그들은 악의는 없다는 듯이 굴면서도 내게 어떤 말이든 했다. 나를 판단했고, 평가했고, 가르쳤다. (찌질이들)

사실 나는 축복받은 시댁과 남편을 두고 있다. 모두 나의 편이며 내게 어떤 것도 기대하거나 바라지 않는다. 나의 선택을 존중하고, 자유로울 것을 권장한다. 그래서 이 결혼을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유부녀가 되는 관문에서 마음을 더욱 다잡아야 했다. 무언가 더 해야 할 것만 같은 불안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껏 그래 왔던 것처럼 내 선택과 책임에 따를 뿐 그 어느 것도 강요받거나 어떤 흐름에 흔들릴 필요는 없다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렇게 결혼이 주는 두려움을 누르고, 꿈에 대한 생각이 무르익고 있을 무렵 나의 의지를 과소 해석하는 사람이 나타났다, 바로 우리 삼촌.

“할머니, 난 결혼해도 내가 하고 싶은 건 다 할 거야. 지금도 준비를 하고 있고, 글을 쓸 거고 책도 내고 싶어.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무언가를 배우고 나만의 일을 할 거야.”

이 말이 할머니를 통해 삼촌에게 전해지자 “요즘엔 결혼한 여자들도 집에서 안 놀고, 돈 번다”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나는 밥벌이가 아닌 꿈에 대해서 말했고, 그것은 내겐 조금 더 대단한 것이었음에도.

생각해보니 내 결혼 소식에 사람들이 “일은 어떻게 할 거냐”고 묻던 것이 떠올랐다. 내가 한 말이 직접 이해되기보다 유부녀라는 사실을 거쳐 판단되는 것은 예삿일이었다. 유부녀가 된다면 정작 의식되지 않을 일이겠지만 나는 삼촌의 말에 드높았던 자아가 고정관념에 부딪히는 느낌을 받았다. 그것이 내가 앞으로 감당해야 할 혼자만의 갈등일까. 한 개인이었던 내가 유부녀가 되고, 그에 따라 비치는 것은 지금보다 더 커다란 짐을 짊어매야 함을 예고하는 것만 같았다.

결혼식을 한 달 남짓 앞뒀다. 결혼이 주는 두려움과 생각 더미들은 꽤나 복잡하고 어렵다. 다만, 그것들은 내가 지금껏 여자로 살아오면서 느꼈던 답답함과 맞물려있다. 그러나 적어도 나는 여자, 엄마, 며느리, 아내의 역할에 집중하기보다 이제껏 그래왔듯 내가 바랐던 미래에 가까워지는 데 충실한 삶을 살고 싶다. 그러면서도 이것이 이기적으로 비칠지, 어렵지는 않을지 걱정하는 나는 분명 여성으로 잘 학습된 사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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