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초상화
엄마는 나와 동생이 아주 어렸을 때 우리를 데리고 일년에 한 두 번 강경에 있는 그리운 친정 어머니, 친정 아버지를 뵈러 외가에 가셨었다. 시집을 가고 낳은 두 아이의 손을 잡고 설레는 마음으로 버스에서 내려서 외가로 향하는 엄마의 표정은 마치 소녀처럼 들떠있었고 즐거웠다. 외할머니는 집 밖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우리가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아이고 야들아!’ 하며 버선발로 달려와 맞아주셨다. 눈가에는 우리가 신통방통하다는 애정을 그득히 담은채로 말이다. 엄마와 외할머니는 서로 부둥켜안고 너무도 반갑고 그리운 인사를 나누고 집안으로 함께 들어갔다.
논과 밭을 일구는 전형적인 농가였던 우리 외가는 집 근처에 각종 채소를 가꾸는 밭과 대가 길게 늘어선 옥수수 밭이 있었다. 마당에는 위 아래로 펌프질을 해서 물을 퍼올리는 방식의 전통적인 수돗가가 있었고 담 주변에는 각종 화초가 여기저기 풍성하게 피어있었다. 마당 한 켠에는 텃밭이 있어 외할머니는 수시로 가꾸는 채소들에 비료를 주고 물을 뿌리곤 하셨고 텃밭 앞으로 위로 하늘에는 빨래 줄이 길게 달려있어 손빨래한 것들을 죽 늘어 말리곤 하셨다. 이 뿐만 아니다. 전통 한옥인 집 건물 뒤로는 소와 염소, 닭들이 있는 나무로 구조를 세운 외양간이 있어 언제나 가축들의 울음소리가 정겹게 울려 퍼졌다. 나는 그 외양간 앞에서 소와 닭들을 신기한 눈으로 쳐다보곤 했다.
엄마는 짐을 풀자마자 곧 외할머니와 함께 부엌에 들어가 그동안 밀려놨던 이야기를 나누며 저녁밥을 지으셨다. 넉넉하지 못했던 외가에서 엄마는 두 남동생을 둔 장녀였다. 그래서 언제나 친정 살림을 도맡아 하셨고, 일찍 학업을 마치시고 두 남동생을 뒷바라지 하셔야 했다. 그래서 친정 살림이 몇 년이 지나고 방문한 그 때에도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척척 익숙하였다. 당뇨가 있었던 외할아버지, 농사 일로 디스크가 있었던 외할머니 때문에 겉으론 표현을 안해도 속으로는 언제나 친정에 대한 염려로 가득했던 우리 엄마였다. 오자마자 외할머니 편찮으시랴 두 팔 걷어부치고 재래식 부엌의 아궁이를 장작을 넣어 떼며 커다란 검은 가마솥에 쌀을 넣고 물을 부어 밥을 지으셨다. 마른 소나무가 들어간 아궁이에서 매캐한 하얀 연기가 재래식 부엌 밖으로 새어나왔다. 부지런히 마당에서 펌프질을 해서 물을 퍼올린 후 그 물을 날라 부엌에서 국을 끓이셨다. 맛있는 김치국이었다. 외할머니는 외손녀들이 왔다고 귀하디 귀한 고기를 국에 듬뿍 넣어 한웅큼 휘저으셨고 멀리서 온 손녀들이 배고플쌔라 과일을 깎아 내오셨다. 솔나무가 타는 향긋한 냄새와 가마솥의 밥이 익어가는 냄새, 갓 농사지은 옥수수와 읍내에서 사온 사과가 어울어져 지금도 잊지 못할 외가의 향연을 자아내고 있었다. 엄마는 외할머니의 허리 디스크와 손가락 마디 관절염을 걱정하여 할머니에게 속상한 말투로 왜 쓸데없이 움직이시냐고 핀잔을 주셨다. 외할머니는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니 상관말라고 되받아치신다. 그렇게 옥신각신 외가의 저녁은 깊어갔다.
다음 날 엄마와 외할머니는 집 앞 밭에 가셔서 밭을 일구셨다. 한 여름 온갖 채소들이 건강한 잎사귀를 내며 커가고 있었고 옆으로 길게 늘어선 옥수수 밭에서는 높은 옥수수대들이 먹음직한 옥수수들을 내며 우리들의 군침을 삼키게 했다. 나와 동생은 그 옥수수대 주변을 돌며 삐죽이 나온 옥수수들을 구경하며 꽃을 따고 잠자리를 잡았다. 엄마는 우리들에게 외가 주변 동네를 보여주시며 ‘엄마가 자란 동네야.’ 하셨다. 엄마가 동네 친구들과 학교 다니며 뛰놀며 나고 자란 이 푸근한 시골 농촌을 우리는 낯설지만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엄마의 냄새가 동네 모퉁이, 담벼락, 길가 나무들, 밭의 흙 등 곳곳에서 묻어나오고 있는 것 같았다. 아낌없이 주는 자연과 그 자연 닮은 소박하고 순수한 사람들이 한데 어울어진 동네. 이러한 자연환경에서 비록 가난했지만 넉넉한 인심과 어려운 사람들에 대한 한없는 동정심과 착하고 따뜻한 마음씨를 타고나 자란 엄마였다.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여주는 자연의 마음씨를 가진 엄마. 우리는 그 가슴 품안에서 우주의 광활한 사랑과 풍성함을, 솜털같이 따뜻한 정서적 체온을 흡수하며 느끼고 자란 특별한 행운아들이었다.
그날 저녁, 엄마와 외할머니는 마당 한켠에서 자라고 있던 봉숭아 꽃을 한 봉지 가득 뜯어다 빻으셨다. 그리고 우리의 작은 손가락에 그 빻은 봉숭아를 한꼬집씩 올려 비닐로 감싼 후 면실로 묶어 주셨다. 빻은 봉숭아 꽃 향기가 단 난생 처음 해보는 봉숭아 물이었다. 우리의 열 손가락에 하나하나 감아주시고 엄마도, 외할머니도 재미난다는 듯이 서로의 손가락에 빻은 봉숭아 꽃을 올려 비닐로 감싸주고 면실로 감아주었다. 두 분의 얼굴에는 오랜만에 모녀가 함께 느껴보는 즐거움과 추억의 회상이 흘렀다. 우리들은 열 손가락을, 외할머니와 엄마는 중지와 약지와 새끼손가락에 봉숭아를 올려 묶은 손가락들을 서로 바라보며 배시시 웃었다. 나는 묶여있는 손가락들의 낯선 느낌에 자꾸만 만지작 거리다 어느새 잠에 들었다. 다음 날 아침 식전에 다급하게 깨우는 엄마와 외할머니에 이끌려 일어나 손가락을 풀었다. 빨알갛게 물든 봉숭아꽃 빛깔 앙증맞은 손가락들이 하나하나 드러났다. 나는 엄마의 손가락도, 외할머니의 손가락도 보려고 달려들었다. 그분들의 손가락에서도 비록 반복되는 밭일과 집안 일로 거칠어졌지만 그분들의 외모만큼이나 곱게 물든 꽃빛이 수줍고도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엄마와 외할머니는 서로 왜 이렇게 고생하며 움직이냐고 투닥거리셨지만 일 욕심은 두 분 다 둘째가라면 서러웠다. 엄마는 오랜만에 친정에 왔으면 편히 쉬고도 싶으실 텐데 부엌으로, 마루로, 밭으로, 마당으로, 외양간으로 바삐 움직이시며 집안을 살피고 외할머니를 도왔다. 몸 성하지 않은 어머니를 두고 시집을 온 딸의 아픈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바쁜 움직임과 손놀림이었다. 그렇게 외가에서의 하루하루가 가고 있었다.
외가에서의 마지막 날 저녁 안방에서 식사를 하며 오래된 낡은 흑백 텔레비전을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엄마 그리고 우리 둘은 함께 보았다. 때마침 나온 나훈아, 남진 등 가수들의 공연으 보면서 그리고 김지미 등 옛 배우들의 모습을 보며 엄마는 매우 반가워했다. 다시 소녀가 된 엄마. 엄마는 어릴 때 좋아했던 가수들과 배우들 이야기를 우리들에게 해주며 반가움을 금치 못해했다. 평범한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 했다. 외할머니도 그런 엄마를 보며 좋아하셨다. 나는 엄마의 낯선 모습에 조금 어리둥절했지만 엄마의 상기된 목소리는 귓가에 기분 좋게 맴돌았다. 지금 생각하면 엄마도 좋아하는 가수, 배우들에 열광하며 엄마의 엄마, 아빠에게 사랑받고 어리광부리며 자란 평범한 딸이셨던 것이다. 엄마의 기분 좋은 목소리를 들으며 어린 나는 엄마의 낯선 어린 시절의 추억 속에 빠져들었다. 밥하느라 고생하는 엄마가 항상 이런 좋아하는 것들만 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엄마와 함께 한 외가 나들이에 대한 기억은 가슴 한켠에 그리움으로 아리도록 아프면서 정겨운 광경으로 남아있다. 엄마가 아닌 꾸밈없는 평범한 딸로서 어려운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를 생각하는 마음 깊은 모습과, 학창시절을 보내며 성장 배경이 되었던 자연 가득한 솔잎 향과 소똥 냄새가 어우러진 그 동네의 담벼락들. 그리고 그 풍경 속에 남아있는 엄마의 환한 웃음을 오늘도 나는 가슴 아프게 떠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