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두콩떡케이크 (feat. 가내수공업)
완두의 계절이 왔다. 축구장으로 가는 길에 보이는 텃밭에서 완두꽃이 핀 것을 보았는데 어느덧 꽃이 지고, 콩깍지마다 통통한 완두콩이 알알이 맺힌 계절이 왔다. 요리를 좋아했지만 부엌과 거리 두기를 하고 있는 요즘, 나에게 제철재료는 꼭 맛을 봐야 하는 것이기보다 그저 어떤 계절이 왔음을 알려주는 기쁨을 주는 것이다.
초록 완두콩은 참 귀엽다. 하나로마트 로컬푸드 매대에 완두콩깍지가 나오면 그대로 지나치질 못한다. 내 눈은 이미 콩깍지 속 동글동글한 초록 완두콩을 보고 있다. 우리 집 냉장고에 아직 정리를 못한, 얼마 전에 산 완두 콩깍지가 있다면 매대 앞에서 고민을 해보지만 대부분의 경우 나는 쇼핑 카트에 완두콩깍지를 담는다.
'우리 집으로 가자!'
완두콩이 귀여운 것은 동글동글하고 통통한 모양과 초록색의 조화 때문만은 아니다. 해마다 완두가 예쁜 계절이 오면 콩깍지째 사서 아이들에게 완두 콩깍지 까기를 부탁한다. 작고 통통한 손으로 깍지를 열고 귀여운 콩알을 꺼내며 웃는 아이들의 모습이 완두 속에 담겨 있다. 나의 완두의 계절 속에는 세네 살의 아이들의 귀여운 웃음소리가 들어있는 셈이다.
아무튼, 나는 올해도 완두콩깍지를 샀다. 이 완두콩으로 무엇을 할지 생각은 해보지 않았지만 귀여우니까 그냥 산 것이다. 딱히 대단한 음식을 하지 않아도 햇 완두콩을 넣어 지은 밥은 얼마나 맛있다고!
저녁 상을 치우고 완두 콩깍지를 가져왔더니 아이가 돕기 시작한다. 올해도 완두콩은 여전히 귀엽다. 완두콩을 흐르는 물에 가볍게 씻다가 문득 몇 년 만에 떡을 찌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곧장 냄비에 물을 붓고 완두콩을 삶다가 설탕을 넣어 조리기 시작했다. 머뭇거리다가는 못할 게 뻔하니까 생각이 들 때 바로 하는 게 낫다.
완두배기는 잘 식혀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그리고 기다리던 주말, 떡케이크 강사 자격만 갖춘 나는 5년 만에 떡을 찌기로 결심했다. 먼저 400g의 쌀가루가 필요했는데 눈대중으로 400g을 맞췄다. 그래도 물 양과 설탕 양도 계산해야 하니 전자저울로 재보자고 확인했더니 아주 정확하게 400g이었다.
'뭐야, 감이 살아있잖아!'
근거 없는 자신감이 막무가내로 올라왔고, 막가파식 떡 찌기도 시작되었다. 쌀가루를 고운 체에 두 번 치고, 소금은 한 소금 넣어 잘 섞은 다음 물을 넣었다. 늘 방앗간에서 빻아 온 멥쌀가루만 쓰다가 건식 쌀가루를 쓰려니 물 양이 맞는지 석연치 않은 모양은 있었지만 쌀가루 한 줌을 쥐어보았을 때 뭉치는 느낌은 대충 맞는 것 같았다. 그리고 가장 마지막으로(그리고 가장 중요한) 설탕을 넣고 재빨리 섞어 찜기 속 원형 틀의 가장자리부터 채우기 시작했다.
쌀가루가 반 정도 찼을 때 식힌 완두배기를 고루 펴서 올렸다. 머릿속에서는 새하얀 설기 사이에 설탕에 절여 별 모양이 된 초록 완두콩이 든 완두콩떡케이크가 곧 완성될 예정이다. 남은 쌀가루를 모두 넣고 윗면을 고르게 정리했다. 센 불에서 25분, 5분의 뜸 들이기가 끝나면 상상 속의 완두콩떡케이크가 눈앞에 놓여있을 예정이다.
후다닥 설거지부터 끝냈다. 순간의 집중력으로 찜기 속으로 모든 재료들을 넣었으나 놓친 몇 가지가 떠올랐다.
저 틀을 중간에 꺼냈는데, 언제 꺼냈더라?
어머나, 유격 주기! 잊어버렸어!
걱정을 하는 사이, 망쳤을까 봐 찜기 뚜껑도 못 열어 본 사이 뜸 뜰이기 시간도 모두 지나갔다.
이제는 뚜껑을 열어 완두콩떡이 살았는지, 죽었는지 확인을 해야 할 시간이다.
떡을 찔 때 쓰던 대나무 찜기를 꺼내기가 귀찮아 일명 해바라기 찜기에 쪘는데 아뿔싸, 어떻게 꺼내야 할지 심각한 문제를 마주하게 되었다.
다행히 딱 중간에 잘 자리를 잡은 완두배기 덕분에 예쁜 단면을 가진 완두콩떡케이크가 완성되었다.
하지만 안타깝지만 오늘 완두콩떡케이크는 실패다. 물 양 조절부터 실패였다. 저 거친 옆면과 흩어진 쌀가루들의 흔적까지, 가내수공업은 언제나 정확한 계량과 올바른 도구를 사용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가계를 거덜낼 수도 있기 때문에.
아마도 나는 내일 다시 어슬렁어슬렁 완두 콩깍지를 찾으러 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