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전 주의 사항>
이 글은 제가 2021년 5월 30일에 쓴 글입니다. 지금은 이런 '감성감성한' 글을 쓰지도 못하지만 읽지도 못합니다. 일부 독자님께서는 닭살이 돋을 수 있으니 주의하세요.
꼭 아래 링크의 음악과 함께 읽어주세요. 왜냐하면 제가 2년 전에 글친구들에게 이렇게 읽어드렸거든요. 드립커피를 한 잔씩 내리면서 말이죠. (하하, 이제야 말인데 음악 틀고, 커피 내리고, 글도 읽고 얼마나 바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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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커피 한 잔 할까요?
어서 오세요.
보통 때 저는 해바라기꽃이 활짝 핀 정원을 보며 거실에서 커피를 마시는 것을 좋아해요. 그런데 오늘은 2층이 더 좋을 것 같네요. 우리 2층으로 올라갈까요? 해바라기 정원은 보이지 않지만, 마침 캠핑을 온 것처럼 꾸며 놓은 방이 있어요. 오늘처럼 하늘이 참 예쁜 날에는 그곳이 더 좋을 것 같아요.
잠시만요, 음악부터 고를게요. 이 곡은 요즘 제가 좋아하는 거예요. 음악을 들으며 기다려 주세요.
그럼 저는 물부터 끓일게요. 물이 끓는 동안 커피 서버에 드리퍼를 올리고 커피 여과지 아랫부분을 살짝 접어 드리퍼에 맞춰 넣을게요. 이제 갈아 놓은 원두를 2스푼만 담을게요.
날이 따뜻해 벌써 물이 끓네요. ‘커피 주전자’라고 불리는 입구가 가늘고 긴 드립포트에 이 물을 옮겨 담을게요. 이제부터 제 손목의 움직임이 우리가 함께 마실 커피의 맛을 결정할 거예요. 맛있는 커피가 나오길 주문을 걸어주세요.
먼저 손목 스냅을 이용해 여과지를 살짝 적시듯 원두가루에 물을 조금 부을게요. 갈아놓은 원두를 뜨거운 물에 불리는 것인데 사실 몇 분 동안 불려야 하는지는 저도 몰라요. 아마 이만큼이면 적당할 것 같아요. 이제 물을 더 부어 커피를 내려 볼게요.
최근에 누굴 생각했어요?
저는 조금 전까지 엄마 생각을 했어요. 그냥 집에 있으면 엄마 생각이 가끔 나더라고요. 하지만 커피를 내리는 이 순간만큼은 친구 성남이 생각나네요. 그 친구가 커피 내리는 방법을 가르쳐주었거든요. 원두를 '이만큼' 불리라고 가르쳐 준 친구예요. 더 자세히 물어보지 않고 '아!' 하며 고개를 끄덕였던 그때가 떠오르네요. 신선한 원두는 이렇게 하얀 거품이 보글보글 난다고 해요. 이것도 성남이 가르쳐줬어요. 오늘의 원두는 ‘신선해!’라고 열렬히 표현하고 있네요. 이제 물을 더 부을게요.
다른 사람에게 내 마음을 잘 표현하는 편이에요?
전 표현이 서툴러요. 늘 감정을 '적당히'에서 맞추려고 애쓰는 것 같아요. 너무 좋아하지도 딱히 싫어하지도 않도록 노력하죠. 그래서 순간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사람들을 보면 막 부러워져요.
손목으로 원을 그리며 드립포트를 기울이면 가는 물줄기가 잘 볶인 원두가루 위로 떨어져요. 이제 물줄기는 뜨거운 태양에 그을린 피부색 같은 빛깔로 변해 커피 서버에 모인답니다. 지금처럼 말이죠.
"연한 커피를 좋아해요, 진한 커피를 좋아해요?"
이제 취향에 맞게 뜨거운 물을 더해 마실까요?
어때요? 저는 드립 커피를 좋아하는데, 처음부터 이 어른스러운 맛을 좋아한 것은 아니었어요. 라테의 텁텁한 우유맛이 싫어지고, 캐러멜마키아토의 시럽이 너무 달게 느껴진 뒤부터 원두의 맛을 즐기게 되었어요. 그리고 친구 덕분에 커피의 매력에 눈을 떴지요. 아까 말했던 친구, 성남을 기억하죠? 성남은 멋진 카페를 운영하며 로스팅도 직접 하고, 유명한 커피 대회에서 수상 경력까지 가진 김준호 씨를 남편으로 두었어요. 성남이 아니라 그녀의 남편이 고수라는 말이죠. 그래도 수다가 떨고 싶거나 친구의 얼굴이 보고 싶을 때 찾아가면 정성껏 커피를 내려줘요. 세계 각지에서 온 원두 소개부터 여러 가지 커피 이야기를 들을 때가 있지요.
물론 몇 번을 알려줘도 저는 여전히 잘 알지 못해요. 성남은 커피를 내리며 늘 자연스럽게 저에게 말을 걸었고 저는 성남의 손놀림을 보며 우리가 나누는 이야기에 마음을 맞추었어요. 오늘은 친구의 모습을 따라 해 보았는데 어때요, 실력 있는 바리스타처럼 보였나요?
제가 내린 커피는 그때마다 맛이 달라요. 그래서 오늘의 커피는 '오늘의 커피'일뿐이죠. 드립을 내릴 때마다 다른 맛이 나고 설거지거리도 잔뜩 나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이 커피를 좋아하는 이유는 아주 단순해요. 커피 서버에 모인 커피를 머그잔에 옮겨 담아 의자에 기대앉으면 지금처럼 마시기 딱 좋은 온도로 식어있기 때문이죠. 너무 뜨거운 커피에 놀라 입천장이 까질 일도 없고 오로지 이 풍경과 커피의 향을 즐기기만 하면 되니 얼마나 좋아요?
따뜻한 커피 한 잔으로 우리는 같은 온도를 나눠 마셨네요. 무뚝뚝한 제가 마음을 표현하는 방식인 거죠. 적당히 따뜻한 마음이 전해졌나요? 당신의 이야기를 담아 다음에 또 와요.
우리 또 커피 한 잔 해요.
다정한 독자님! 오늘도 무지개인(공)간을 찾아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굳세나 작가님을 만났다 (brunch.co.kr)
오늘은 딱 한 모금만 (brunch.co.kr)
굳세나 작가님을 만난 이야기에서 시작된 커피 글모음을 오늘 마무리하네요. 커피를 좋아하니 자꾸 커피 생각을 하고, 글을 쓰게 됩니다. 오랜만에 예전 글을 꺼내 다시 읽으며 2년 전의 저를 만났네요.
다정한 독자님께서도 어제가 될 오늘을 즐거운 마음으로 채우시길 빕니다. 그리고 불금이잖아요.
제 글을 읽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