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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지개인간 Jul 13. 2023

발가락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발가락은 가끔 손가락보다 섬세하고 또 유용합니다.




  제 엄지발가락은 엄지손가락에 비해 2배나 큽니다. 옆으로 통통하지요. 왕 커다란 엄지발가락은 도대체 무얼 하는가 싶을 때도 있지만 지난겨울에 엄지발가락의 발톱이 모두 빠졌을 때, 뒤뚱거리는 듯한 발걸음에 운동화만 신고 다닌 기억이 있습니다. 엄지발가락은 가장 낮은 곳에서 저의 모든 걸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지켜주는 그런 역할을 하나 봅니다.

 

고맙수다!


  발톱이 빠진 이후로 다시 자라는 동안 엄지발가락은 열 손가락과 열 발가락을 합쳐 단연 관심 발가락 1, 2위로 우뚝 올라섰습니다. 요즘은 저녁을 먹고 소파에 앉아 발가락을 쳐다보는 시간을 종종 보내고 있습니다. 발톱이 먼저 빠졌지만 상태가 심각해 더디게 자라는 왼쪽 발가락은 늦게 빠졌지만 새 발톱을 잘 내고 있는 오른쪽 발가락에 비해 더 많은 눈 맞춤을 했지요. 아무튼 엄지발가락은 참 크네요. 춥파춥스 사탕보다 더 큰 것 같습니다. 발톱이 있어야 할 자리에 발톱이 자라고 있다는 것은 감탄할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균형을 갖춘 느낌이 듭니다. 낮에는 양말 속에서, 밤에는 이불속에서 까만 풍경을 먹이 삼아 잘 자라준 것도 장합니다.


장하다니! 그럴 필요까지야, 싶지만 말입니다.


  아무튼 참 고마운데 할 일을 했을 뿐인 것 같은 발가락에게 꼭 전하고 싶은 고마운 마음이 있습니다.


  바로 설거지를 할 때 음악이 뚝, 끊기면 발가락이 애를 쓰며 다시 [▶] 재생 버튼을 꾹 눌러줄 때입니다. 지난 유월만 해도 손에는 거품이 풍성한 수세미를 들고 그릇과 접시를 씻고 있는데 흘러나오던 음악이 끊긴 적이 두어 번은 됩니다. 젖은 손을 씻고 마른 수건에 닦으려고 하다가 그만 귀찮아졌습니다. 그때 '유연한' 엄지발가락이 스트레칭을 하며 출동했습니다.


  '쿡, 쿡, 쿡!'

  음악이 흐르다가 끊기면 그 시간이 아주 잠깐이라고 해도 꽤 오래인 것 같을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유연한 발가락이 몇 번의 애씀 끝에 드디어 정적을 깼지요. 휴대폰 액정에 몇 번이나 발톱을 부딪혔는지 모르겠습니다. 화면이 완전히 꺼지면 그때는 잠금 암호 입력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손가락이 나서야 하는데 고맙게도 조리대 위에 있는 휴대폰의 액정을 정확히 쿡쿡, 눌러주었습니다. 손(hand)을 덜었습니다. 다시 콧노래를 부르며 설거지를 즐길 수 있게 엄지발가락이 도와주었지요. 때로는 발가락이 쓰임새가 좋습니다. 정말 장합니다.  


  엄지발가락에게 고마운 일이 또 있습니다. 바로 알람을 꺼줄 때지요. 알람을 꺼준다니! 세상에 정말 고마운 일이지 않습니까? 평소처럼 맞춰진 알람 소리에 일찍 일어났지만 10분만 더 자고 싶은 그런 날이 있잖아요. 그런 날에는 전자파를 걱정하며 머리맡에서 최대한 멀리멀리 떨어진 발가락 아래에 휴대폰을 두고 다시 잠에 들 때도 있습니다. 금방 잠이 들었는데 금세 알람이 울립니다. 눈은 떠지지 않는데 발가락은 더듬더듬 핸드폰을 찾아냅니다. 그리고 엄지발가락에 힘을 주고 정확히 [중단]을 누르지요. 정말 장합니다.


  하루를 시작하며, 장한 발가락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저녁이 되면 뜨거워지는 발바닥만큼 고생이 많다고 말이죠. 살아갈 수 있도록, 설 수 있도록 균형을 잡아줘서 고마워,라고 말해봅니다. 귀를 통해 몸 안으로 들어간 말이 가능하다면 핏줄을 타고 발가락을 한 바퀴 돌고 오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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