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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지개인간 Jul 04. 2023

작은 성공부터 다시 시작


어떻게 괜찮을 수 있지?



글쎄, 어떻게 괜찮을 수 있지?


   

  최근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이다. 그럼 나도 되묻는다.

  돌이켜보니 그때 가장 먼저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행동으로 옮긴 것은 딱 두 가지였다. 세 가지였다면 어렵겠지만 딱 두 가지라서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첫 번째는 살면서 내가 잘한 일을 적어보았는데 나는 그게 나를 살게 했다고 말할 것이다. 평소에도 나 자신에게는 무한한 신뢰와 긍정을 보내는 편이지만 이번에는 머릿속으로만 떠올렸던 것을 종이에 적고 소리 내서 읽어보기로 했다. 아마도 그날 밤은 고통의 절정이었던 것 같다. 까만 밤에 초 하나만 켜놓고 한 줄을 적고 한참 동안 울기를 반복했다. 그날만은 ‘내가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잊은 채 긴장을 풀고, 감정을 쏟아내도 괜찮은 날이었다. 차라리 다 내려놓는 게 더 편해 보이는 생각이 들 만큼 나는 많이 지치고 힘들었다. 불안하게 흔들리는 촛불을 보며 이러다 내가 완전히 무너지겠다 싶은 두려움이 밀려오자, 살기 위해 본능적으로 공책과 펜을 꺼내 들었던 것이다. 그때 나에게 보낸 칭찬을 옮겨 적어 보겠다.


  1. 아이들에게 항상 사랑을 주었어. 덕분에 아이들은 밝게 웃는 모습을 보잖아. 참 잘하고 있어.

  2. 긍정적이잖아. 어떤 경우에도 좋은 면을 볼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은 큰 장점이야. 돈 주고도 못 배워.

  3. 힘들어도 포기한 적 없잖아. 또 운도 참 좋아. 대단해!

  4.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봐. 그리고 자기 성찰을 통해 더 빛나지.

  5. 글도 잘 써, 말도 예쁘게 해. 그것도 엄청난 장점이야. 마음껏 뽐내. 예쁜 모습.

  6. 좋은 사람들이 아주 많아. 피만 안 나눴지 대가족이야. 정말 인복이 가득한 사람이야.

  7. 정말 특별해. 특별한 삶을 살고 있어. 시간을 미리 꺼내 지혜도 갖추고, 때로는 아이 같은 순수함도 간직하고 살잖아.

  나머지는 나만의 비밀로 묻어두고 싶다.

     

  마음이 조금씩 보들보들해지자 책장에서 예전에 읽었던 책 중 하나를 꺼내 펼쳐 보았다. 내가 힘든 순간 꺼내든 책에는 늘 길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번에도 그럴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가졌다. 어떤 책이든 내가 남겨 놓은 흔적이 있을 테니 상관없었지만, 그날 손에 잡힌 책은 <다산의 마지막 습관>(조윤제 저, 청림출판)이었다. 거의 1년 만에 다시 꺼내 본 것이다. 페이지를 쭉쭉 넘기다 시선이 멈춘 곳에는 ‘이야말로 하늘에 내게 준 복이 아니겠는가?’라는 문장이 쓰여 있었다. 복이라니 무슨 복인지 궁금해 얼굴을 더 가까이 책 속으로 가져가보았다.


  ‘어떤 상황에서도 스스로를 잃지 않는 사람은 역경마저 잊어야 할 어두운 역사가 아니라 의미 있는 시간으로 간직할 수 있다.’

  

  다산 정약용 선생께서 자신의 귀양 생활을 돌이켜 보며 쓴 글이었다. 그리고 다산은 귀양 생활 중 학문과 책 쓰는 일에 더 몰두하며 오히려 중요한 성취를 이뤄냈다.

 

  책을 통해 위로를 받고 답을 구한 순간이었다. 게다가 어떤 상황에서도 스스로를 잃지 않았으니 딱 필요한 말을 책이 나에게 건넨 것이었다. 나를 지켰으니 앞으로의 발걸음은 더 의미가 깊어질 것이다. 스스로 삶의 전환점이라고 분명하게 느꼈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  

   

  내가 고등학교 시절부터 롤 모델로 삼고 있는 토크쇼의 여왕인 ‘오프라 윈프리’는 말했다.

  “미래를 생각하면 너무 밝아서 눈이 멀 것 같아요.”

  도서관에서 빌린 <오프라 윈프리의 특별한 지혜>(집사재, 1999년 12월 25일 출간)에서 이렇게 멋진 말을 남겼다. 오프라 윈프리가 책을 통해 씌워 준 세상을 보는 시선은 나에게는 선물처럼 느껴졌다. 눈이 멀 정도로 빛나는 미래가 내 앞에 놓여 있는데, 아무것도 해 보지 않고 삶을 포기할 이유는 결코 없다.


  다음 날 아침부터는 도서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행동으로 바꾸는 두 번째 습관이었다. 경험이 주는 선물일까, 내가 다시 일어서기 위해 필요한 것은 ‘책’이라고 생각했다. 이유를 찾을 필요가 없었다. 몸과 마음이 가장 편안한 시간과 공간 속에는 책이 있었기 때문이다. 마침 집에서 3분 거리에 도서관이 있었다.

  ‘매일 아침 발도장을 찍어야지!’

  의지는 행동을 부른다. 비록 행동으로 옮긴 첫날부터 대설이 내렸더라도 말이다. 눈길 위에 발도장을 찍으며 도서관에 가서 읽고 싶었던 책을 빌려왔다. 한 권을 읽더라도 제대로 읽겠다는 마음으로 독서록도 다시 쓰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독서록에 적은 내용 중 오래 기억하고 싶은 부분은 메모지로 옮겨 서재 벽에 붙여 놓기 시작했다.


  도서관에 다닌 후로 저녁 식사 풍경도 달라졌다. 식탁에 마주 앉아 아이들이 밥을 먹는 동안 나는 그날 읽은 책 내용을 들려주느라 바빴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부동산을 매수했는데 큰 손실이 발생했다는 것과 나의 마음 상태 등, 아직은 어려서 나눌 수 없다고 생각한 엄마의 삶 중 일부를 솔직하게 나눌 수 있었다. 게다가 왜 이런 일이 생기는지 궁금해하는 아이의 물음에 가감 없이 이야기를 해 줄 수 있었다.

     

  나만 잘하면 된다고 스스로를 채찍질하던 때의 집은 쉬고 싶은 곳, 방해받고 싶지 않은 공간이었지만 오히려 이 위기를 통해 귤껍질을 까듯 엄마의 솔직하고 평범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어 좋았다. (아이는 슈퍼우먼 엄마를 잃었다고 잠깐 생각했을 수도 있다.) 이제 우리에게 집은 조용히 쉬고 싶은 곳이 아니라 열심히 산 하루를 저녁 식탁 위에 펼치고, 위로와 응원을 건네며 잘할 수 있다고 밥알처럼 똘똘 뭉치게 해주는 곳이 되었다.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을 지키는 온기 있는 저녁, 말처럼 참 쉬울 줄 알았는데, 식구(食口)라는 말을 행동으로 옮기는데 시간이 이렇게나 오래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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