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인간아, 왜 자꾸 전화하노.
걱정이 돼가지고 그라나?
(해석) 무지개인간아, 왜 자꾸 전화하니?
걱정이 되어서 그러니?
평소에는 전화를 안 하던 무뚝뚝한 딸이 지난 일주일 동안 전화를 많이 하긴 했나 봅니다. 엄마의 입에서 이런 이야기도 나오네요. 주로 전화를 하는 쪽은 엄마였고 '왜 자꾸 전화하실까' 고민하던 쪽은 저였는데 지난 일주일은 서로의 역할이 바뀌었습니다. 평일 오전에는 뉴스 기사를 볼 시간이 없지만 퇴근을 하고 저녁을 먹고 나면 그제야 뉴스를 볼 시간이 생깁니다. 폭우로 인한 피해 소식을 접하며 마음이 무거운 요즘은 가족들 뿐만 아니라 친구들도 걱정이 되어서 안부를 묻는데 저녁 시간을 쓰고 있습니다. 다행히 제 주변 사람들은 별 일 없이 지내고 있습니다. 그래나 뉴스 속에 나오는 폭우 피해 상황은 마음이 너무 아프고 안타깝습니다. 누군가의 가족의 일이라는 생각에 지난 일주일은 온도 차가 큰 마음의 날씨로 산 것 같네요.
지난 주말 제주는 무척 맑았습니다. 뉴스 기사와는 너무나 다른 세상이었죠. 심지어 주말 내내 무지개가 떠서 SNS에 올라온 이웃들이 담은 무지개 사진도 얼마나 많이 만났는지요. 이렇게 하루를 보내고 뉴스를 읽으면 불안한 마음이 쑥 올라옵니다. 같은 하늘 아래이지만 지금 제 몸이 있는 서있는 이곳과 뉴스 속의 현실은 너무 다르기 때문이지요. 게다가 제가 기억하는, 부모님의 전성기 시절 나이를 넘어서니 그만큼 세월을 더 드신 부모님이 자꾸 걱정이 됩니다. 최근에는 모두 말렸는데 꺾지 못할 고집으로 다 내려놓고 제주로 도피하듯 떠나온 것 같아 후회가 되기도 했습니다. 옆에 살았다면 조금이라도 더 자주 보며 적어도 같은 날씨를 겪고 있을 텐데 말입니다.
지난 금요일, 일터의 골목에서 제가 제일 좋아하는 사장님의 어머니께서 돌아가셨습니다. 무거운 마음으로 이른 아침에 일터를 찾았는데 마침 뒤이어 오시는 사장님을 만났어요. 슬픔을 추스르기에는 시간이 충분하지 않은 것 같은데, 뭐 이렇게 일찍 나오셨어요?라고 가장 먼저 묻고 싶었지만 그냥 안아드렸습니다.
"자꾸 눈물만 나요. 팔순 잔치도 준비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갑자기 돌아가실 줄은 몰랐어요."
순간 매일 얼굴을 보고 웃으며 나눈 인사가 사장님을 너머 이분의 어머님과 나눈 인사처럼 느껴졌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마음이 채워지는 다정한 말만큼 상대방의 공간을 인정하는 침묵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갑니다. 아직 어머니를 보내드리지 못한 아픈 마음이 뭉근하게 풀어지도록 '조만간 커피 마셔요.'라는 그녀의 인사를 제가 챙겨야겠습니다.
갑작스러운 이별에 상심한 그녀와 그녀의 어머니와의 거리, 비행기, 택시, 버스를 타고 최단 5시간이 걸리는 곳에 계신 우리 부모님과 나의 거리. 어느 쪽이 더 나은 편이라고는 감히 이야기할 수는 없겠지요. 그녀는 어머니와 몸의 거리는 가장 멀어졌지만 항상 마음속에 어머니를 품고 살 것입니다. 그리고 어머니께서는 더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든든한 지원을 해주실 것 같습니다. (그녀는 늘 얼굴에 미소를 띠고 있습니다. 아마 이런 성격은 어머니 덕분일 거라고 추측해 보았습니다.) 그에 반해 저는 그녀에 비해 몸의 거리는 가깝지만 바쁜 일상에 들어서면 안부 전화를 드려야겠다는 생각도 깜빡 꺼두고 살기도 합니다. 어느 날 문득, 부모님 중 한 분의 전화를 받으며 그제야 아차, 하고 알아차리기도 합니다.
앞으로는 고맙고 사랑하는 마음을 아끼지 말고 자주 전해야겠다는 생각을 들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폭우로 피해를 입으신 분들께 위로의 마음을 전합니다.
그 어떤 말도 위로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 날에는 침묵을 지키는 편이지만, 용기를 내어 위로를 나누고 싶었던 지난 일주일의 무거운 마음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