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히 계세요, 여러분.
저 동굴로 들어가요.
큰 아이가 다섯 살 때부터 해마다 여름에 한 번, 겨울에 한 번 동굴 생활을 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1년 열두 달 중 여름 한 달, 겨울 두 달해서 총 세 달을 사람을 만나는 모임도 끊고, 안부를 주고받는 일도 지양하고, '돌밥(돌아서면 밥 먹을 때)'을 하루 중 가장 중요한 과제로 여기는, 저만의 동굴에서 살고 있지요. 이게 다 아이의 방학 때문입니다.
아이가 방학을 하면 모든 우선순위가 아이와 함께 할 수 있는 것에 맞춰집니다. 올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니 올해는 지난겨울 방학보다도 더 한 느낌입니다. 무더위로 잠을 설치면서 늦잠을 자고 피로가 쌓이니 커피에 의지하며 낮 시간을 온 에너지를 끌어모아 살아봅니다. 해야 할 일들을 하는 것으로도 충분한 낮 시간이라 나를 위한 시간을 낼 여지가 없습니다. 해가 지면 다시 열대야에 잠을 설치고 늦잠을 자고... 그렇게 7말 8초를 보내고 있습니다.
오늘은 글쎄 화장을 하다가 눈썹 그리기와 립스틱 바르기를 빠트린 거 있죠? 일터에서는 어린이들을 만나기에 아직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어 생기 있는 입술은 잠시 잊어도 괜찮습니다. 그런데 눈썹은! 소중합니다. 오늘 밤 9시가 넘어서야 눈썹을 그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어요.
오호통재라! 나의 생기 담당 눈썹과 입술이여!
그러고 보니 아침에 화장을 하면서 '뭘 잊은 거 같은데?'라고 생각을 한 게 떠오릅니다. 잊은 게 무엇인지 기억이 나지 않아서 '선크림은 발랐네, ok. 다 했어.'라고 안심했는데 알고 보니 선크림이 아니라 눈썹 그리기였습니다. 아무튼 오늘 만난 분들이 희멀건 눈썹의 사람을 보고 인간적이라고 느꼈길 소원을 빌어 봅니다.
제주에 살아서 그나마 기쁜 동굴 생활이라면 바로 제주의 여름 방학은 무척 짧다는 것이지요. 올해는 광복절이 지나면 한 놈(!)씩 등교를 시작합니다. 한 녀석씩 아니 한 남자씩 말입니다. 주말부터는 미뤄두었던 올해의 여름휴가를 다녀올 계획입니다. 휴식이 필요한 순간에 마침 휴가가 기다리고 있네요. 그리고 휴가를 다녀오면 신속하게 일상으로 돌아올 겁니다. 그때는 제목만 적고 정리하지 못했던 브런치 스토리의 글도 한 편씩 완성해서 올려야지요.
아이의 방학이 제 삶에 영향을 미친 지 10년이 되어 갑니다. 적응할 만도 한데, 여전히 긴장되고 일상의 우선순위가 바뀌는 것을 보면 아마도 세상의 모든 엄마들의 삶이 아이에게 맞춰 흘러가는 것 같습니다. 그럴 때마다 엄마가 생각납니다. 어떻게 삼 남매를 키우셨는지! 그래도 방학이나 학기 중이나 매번 차려주신 엄마의 밥상은 도저히 제가 따라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얼른 개학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얼른 동굴에서 탈출하고 싶습니다. 어른 사람과 브런치도 먹고 싶고, 글도 쓰고 싶습니다. 일주일 정도 남은 동굴 생활을 잘 마무리하고 글로 만나요.
태풍에 큰 피해가 없길 빕니다. 오늘 밤의 평화도 함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