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지개인간 Sep 06. 2023

아이가 아프니 엄마가 된 것 같습니다

  점심시간이 지난 시각. 학교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겨울이 어머니, 안녕하세요. 겨울이가 어지럽다고 보건실에 왔는데 열이 38.4도예요. 해열제부터 먹여도 될까요?"

  그렇게 겨울이는 하교를 했습니다.

  다행히 해열제가 잘 들었고, 곧 열은 내렸습니다.


  아이가 아프면 신경 써야 할 일이 많아집니다. 감정에 흔들리지 않고 평소처럼 일을 하면서 수시로 아이를 돌보고 확인해야 합니다. 하지만 결코 번거롭거나 귀찮은 일은 아니지요. 다만 일을 하는 동안 엄마로서 함께 있어주지 못하는 것이 미안한 마음입니다. 다행히 겨울이는 그런 부분을 잘 이해해 줍니다. 세상이 자신을 중심으로 돌아가주길 바라기보다 돌아가고 있는 세상에 자신도 함께 어울려 가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첫째인 여름이는 온 집안을 통틀어 첫째인 귀한 아이입니다. 사랑도 듬뿍 받았고, 크면서 필요한 것들은 가족들과 이웃 이모들이 미리 채워주셔서 늘 풍족했습니다. '둘째처럼 키우자!'라며 매일 밤 잠든 여름이를 보며 다짐했지만 여름이가 타고난 위치는 귀한 첫째의 자리였습니다. 금방 클 아이들에게 비싼 옷이 뭐냐고 생각했지만 저도 못 입어본 브랜드의 키즈 의류를 선물 받을 때면 여름이는 날 때부터 사랑과 관심을 가득 받을 자리였다고 생각을 할 수밖에요. 둘째처럼 키우고 싶었던 제가 사는 옷은 저렴한 것이었지만 그 대신 좋은 것을 먹이려는 노력은 귀한 외동아들을 둔 엄마가 맞았습니다. 딸기가 막 나오기 시작하는 계절에 뜬금없이 딸기가 먹고 싶다는 여름이를 위해, 비싸서 엄두도 못 낼 그해 첫 딸기를 사서 집으로 가며 행복했던 기억은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네 살 터울로 태어난 동생 겨울이가 태어나고 걷기 시작하면서 여름이, 겨울이와 함께 외출을 하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신발을 신는 것을 지켜보며 처음으로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하는 건이지 진지하게 고민을 했습니다. 여름이에게는 늘 친절했고, 독립심을 키워주려고 노력했지만 가끔은 엄마인 제가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다시 닫히는 꼴을 못 봐 신발은 신겨주기도 했습니다. 금쪽같은 시간이니까요. 겨울이를 낳고 같은 시기를 보내보니 지난 4년의 노력과 연습의 결과인지 인내심의 그릇이 넓어져있었습니다. 신발을 신는데 세월아, 네월아 걸려도 웃으며 기다려줄 수 있었지요. 스스로 해내는 모습을 기다려주는 시간이 더 금쪽같이 귀한 시간임을 깨달은 것이죠. 그래서 늘 겨울이에게 말합니다.

  "형이 먼저 태어나서 겨울이가 얻는 좋은 점이 많네."라고 말입니다.


  아무튼 겨울이가 태어나고 '행복한 아이'로 키우는 것에 대한 고민이 많았던 밤이 있습니다. 그때 제가 했던 고민은 이것입니다.

  "신발을 스스로 신은 아이가 더 행복할까, 신발을 신겨 줄 사람이 있는 아이가 행복할까?"

  두 아이가 모두 행복할 거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행복의 이유는 다를 것 같아요. 첫 번째 아이는 자기가 스스로 이룬 결과에 대한 뿌듯함과 작은 성공에서 얻는 행복입니다. 스스로 찾은 행복이 이지요. 두 번째 아이는 옆에 누군가가 함께 있다는 것, 함께하는 데서 오는 행복입니다.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 얻은 행복이지요. 생각이 많아졌던 그날 밤을 지금도 가끔 기억해 봅니다.


  아이들을 모두 재우고, 어두운 거실에서 PC를 켜고 다음 날 저녁식사 후 함께 책을 읽고 놀 생각으로 재미있는 활동지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지난 시간과 함께 이런 생각이 주마등처럼 스친 것입니다. 이제는 둘의 나이를 합치면 제 나이의 절반을 넘으니 여름이와 겨울이도 제법 자랐습니다. 그리고 신발도 스스로, 잘 신게 되었고요. 아이들이 독립하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하니 제가 조심하는 것은 오히려 말이 되었습니다. 어른의 생각을 강요하거나 선택하도록 유도하지 않는 것이지요. 지금은 어릴 때처럼 신발을 스스로 신고 옷을 직접 고르는 것에서 스스로 찾는 행복이 아니라 자신들의 취향이 오직 스스로의 선택이길 존중해 주려고 합니다.


  그래도 아이들이 어렸을 때나 지금이나 달라지지 않은 것이 있다면 아이가 아플 때입니다. 저희 집 아이들은 잘 아픈 편이 아닙니다. 태어나길 건강체로 태어났는지, 평소 건강 상태를 예민하게 잘 체크했는지 이유는 콕 집을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많이 안아주고, 사랑한다고 자주 말해줍니다. 열이 오르면 배를 맞대고 안아 체온을 맞추기도 하고, 팔다리를 주물러주며 뭉쳐 있던 열이 고루 퍼질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오랜만에 겨울이에게 겨드랑이와 허벅지에 뭉친 열을 풀어 손끝과 발끝으로 계속 흘려보내듯 마사지를 해주었습니다.


  손으로 조물조물 마사지를 해주다 보니 아이의 손은 제 손바닥을 넘을 만큼 커졌고, 발도 이만큼이나 자랐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언제까지 엄마의 이런 손길이 필요할지 모르겠습니다만 겨울이는 몸이 가볍게 풀리는 것 같다고 고마워합니다. 오랜만에 엄마 노릇을 하는 것 같습니다. 아이들은 제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빨리 자랐고, 특히 여름이는 이제 제 키를 넘어섰습니다. 엄마는 늘 그 자리에 있고 아이들이 매일 조금씩 독립하며 각자의 삶의 방향으로 앞으로 나가는 것 같은데, 아이가 아프고 보니 엄마의 자리도 아이들의 키만큼의 둘레로 자란 것 같습니다. 나무가 나이테를 그리듯 세월에 따라 때로는 넓게, 때로는 좁게 그 간격을 맞춰가며 엄마도 계속 자라고 있습니다.


  열이 오락가락하던 아이가 새벽 3시에 일어나 배가 고프다고 합니다. 기운이 날 때 죽을 조금 데워 먹여야겠다는 생각에 쇠고기야채죽을 데웠습니다.

  "엄마, 급식은 양이 엄청 많아."

  "그래? 조금만 주세요,라고 말해도 괜찮아."

  "그런데 배식하시는 선생님들도 많거든, 계속 '조금만 주세요'라고 말해야 해서 귀찮아."

  입에서 급식 이야기가 나오는 것을 보니 이제 입맛이 돌아오고 기운이 나나 봅니다. 곧 열이 내리고 체력을 회복할 일만 남은 것 같습니다. 죽 한 그릇을 다 먹은 겨울이가 소화를 시킬 수 있도록 말동무가 되어주어야겠습니다. 아이가 아프니 모든 것을 제쳐두고 엄마로서의 제 모습을 만나게 됩니다.

  엄마로서 무지개인간도 잘 살고 있습니다.



  


  

이전 13화 엄마, 내 옆에서 하품해 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