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것은 모두 살이 찐다
살찌는 것들은 모두 맛있어!
맛있는 식사의 끝에는 이런 말이 튀어나온다. 이 짧은 한 마디에 얼마나 많은 것들이 들어있는지 한 입 크기로 잘라 보자면 방금 숟가락을 내려놓은 오늘의 식사는 입이 아주 즐거웠다는 맛있다, 입만 즐거웠던 게 아니라 입술선을 타고 코로 올라간 음식 냄새와 음식에 어울리는 플레이팅에 눈도 행복했다는, 그래서 배도 빵빵하게 잘 채워졌다는 행복한 감각 기관들의 모두, 이 모두를 만족시킨 음식 덕분에 나는 살이 찔 것이라는 불안한 예감과 동시에 살이 찐 것은 내가 많이 먹어서가 아니라 맛있는 음식 탓이라는 식사를 끝낸 뒤 적절한 타이밍에 내뱉는 핑계까지. 반찬을 하나씩 골라 먹으나 비빔밥으로 먹으나 뱃속에 들어가면 다 똑같다는 엄마의 말처럼 잘 비벼진 감정들이 이 한 마디에 들어있었다. 365일 다이어트를 관심사로 둔 나의 숙명도 함께.
나는 절대 살이 찌지 않는 체질인 줄 알았다. 중학교 때까지도 너무 말라서 보약을 지어먹었고, 살이 조금은 쪘다는 스무 살 때의 사진을 봐도 뼈 밖에 없었다. 내가 기억하는 살이 찌기 시작한 시점은 출산한 이후였다.
2kg가 쪘네. 어머 어떡해!
(보름 뒤) 그래, 찔 수도 있지. 빼면 되니까.
(보름 뒤) 어머, 2kg가 쪘네! 어떡해!
(보름 뒤) 그래, 찔 수도 있지. 진짜 빼자!
더 정확하게는 둘째를 낳은 이후. 뭣도 모르고 돈을 아껴보겠다며 조리원도 가지 않고 혼자 힘으로 신생아와 씨름한 첫째 아이를 낳고는 살이 쭉쭉 빠졌다. 똑같이 했는데 둘째 때는 그게 통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찐 살이 빠지지 않았고, 먹는 족족 살로 갔고, 느낌에는 스무 살 때 마신 맥주와 소주가 10년을 기다렸다 이제 와서 살이 되는 기분마저 들었다. 딱히 미친 듯이 먹는 것도 아니었는데 몸무게는 계단식 상승을 보여주었다. 그것도 꾸준한 상승세. 그 둘째가 10살이 되었고 살이 찌기 시작한 지 10년이 되었고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지만 내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빼면 되니까!' 그래, 빼면 되지. 그놈의 살과 헤어질 결심을 매일 하고, 또 매일 새 살을 받아들인다. (정을 주는 것과는 매우 다른 일이다)
일요일 아침에도 살과 헤어질 결심을 했다. 커피 대신 맑은 연꽃차를 마시며 속을 가볍게 비운 다음 이효리, 아이유가 선택했다는 태국 음식점으로 갔다. 가게 안과 밖이 이국적인 냄새로 둘러싸여 있었다. 코 끝만 스쳤지만 이런 곳은 안 먹어봐도 결론을 알 수 있다. 분명 맛있을 것이다. 게다가 날씬한 분들이 드셨으니 기대했던 가벼운 점심이 될 것 같았다. 메뉴판을 펼치니 쏨땀, 팟타이, 공심채 볶음, 분짜 등 다양한 태국 음식들이 먹음직스러운 사진과 함께 소개되어 있었다. 우리는 말없이 메뉴판만 보았다. 다만 나는 말만 없었을 뿐 머릿속은 아주 요란스러웠다.
'공심채를 먹어야지. 야채! 야채도 먹어야지.'
'태국 음식은 팟타이지. 팟타이도 하나 먹을까?'
'치킨은 좀 헤비한데... 좀 그런가?'
뭐 먹을래?
결국 헤비한 치킨도 시켰다. 눈에 치킨만 보여서, 다른 곳으로 눈을 돌려도 치킨이 아른거려서 시킬 수밖에 없었지만 입 밖으로 낸 공식적인 이유는 월계수잎을 함께 튀긴 닭튀김은 이곳에서만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연유커피도 한 잔 시켰다. 이쯤이면 내 머릿속은 전쟁터다. 한쪽은 살이 찐다고 빨간 불을 켜고 있고, 한쪽은 이곳에서만 먹을 수 있는 특별한 미식이라고 파란 불을 켜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나온 팟타이는 불향이 살아있었다. 팟타이 접시가 바닥을 보일 때쯤 기다리던 타이 치킨이 나왔다. 갓 튀긴 치킨의 유혹, 입 안에 넣으면 바사삭 소리가 날 것이 분명했다. 우리가 앉은 테이블 위로 바사삭, 바사삭... 바사사삭, 바삭, 바삭 소리가 가득 찼다. 이제 겨우 두 조각을 먹었는데, 치킨 접시가 반이 줄어 있었다.
"얘들아, 명심해. 신발을 튀겨도 맛있다는 말이 있듯이 튀김을 먹을 때는 항상 주의를 기울어야 한단다. 왜냐하면 살이 찌기 때문이지. 맛있다고 감탄하며 먹기만 한다면 오동통통 살이 올라 동글동글해진 내 얼굴을 거울로 확인할 수 있을 거야. 뿐만 아니라 어제 입은 바지가 갑자기 줄어든 것 같다거나 겨드랑이가 쪼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수가 있어. 살이 찐 거지. 살이 찔 수밖에 없는 튀김을 먹고 살이 찐 거지. 그러니 욕심을 내서 과식하지 않도록 하여라."
긴 호흡으로 이어간 연설은 '얘들'의 귀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오물오물 움직이는 그들의 입술에 맞고 튕겨 나와 다시 내 귀로 들어갔다. 결국 내가 들어야 할 말을 한 것처럼.
그래, 오늘부터는 진짜 빼자.
본격적으로 살을 빼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사람의 가장 첫 번째 행동은 마트 가기이다. 마트에 가는 이유는 신선한 샐러드 야채를 사러 가는 것이다. 하나로 마트 로컬 코너에는 종류는 별로 없지만 제철 야채가 준비되어 있었다. 고깔양배추를 살까 하다가 500원 더 싼 일반 양배추를 골라 담았다. 오늘 로컬 매대에는 양배추가 다였다. 양배추를 사서 집으로 왔다. 채를 썰고 양배추를 씻어 물기를 쫙 뺐다. 아직 이 양배추로 어떤 것을 할까 정하지는 않았지만 채를 썰어 유리 용기에 보관하면 그냥 두는 것보다 신선함이 오래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채 썬 양배추를 샐러드 접시에 소복하게 담고 유튜브에서 본 최화정 님의 방식대로 사과를 갈아 넣을까 고민을 하다 케첩과 마요네즈를 꺼냈다. 이것은 내가 10살 때부터 너무나 좋아하는 조합이다! 콧노래를 부르고 어깨춤을 추며 양배추 샐러드를 식탁 위에 올렸다. 짜잔.
"마요네즈는 살 안 쪄?"
잠시 미간의 거리가 가까워졌지만 탄수화물이 주는 자비심은 그것을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자비롭게 했다. 미소를 띠며 말했다.
"살쪄. 근데 맛있어."
슥슥 비벼 양배추 샐러드를 입안 가득 넣었다. 고소하고 맛있다. 30년 동안 계속 맛있다. 이 접시만 비워지면 또 살이 찌겠지? 괜찮아, 이제 빼자. 살 빼면 되지.
다정한 독자님! 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먼저 타이치킨에 함께 튀겨 낸 월계수잎이 기억이 나질 않아 올리브잎이라고 우기고 있었는데 @소채 작가님의 글에서 월계수잎을 찾아냈습니다. 하마터면 다른 맛으로 튀겨질 뻔한 치킨의 맛을 소채 작가님 덕분에 잡아냈어요. 소채 작가님의 뜻밖의 도움에 감사드립니다.
지난 주말에 연꽃차를 처음 마신 이야기도 함께 올려 드립니다.
오늘 하루도 행복하시길 빕니다.
연꽃차는 연못맛입니다 (brunch.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