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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지개인간 Aug 21. 2023

엄마, 내 옆에서 하품해 줘

  단언컨대 이것은 제 육아 필살기입니다.

  만약 이것을 뺀다면 제 육아 경력에서 '행복한'이 지워질지도 몰라요.


  '이것'은 바로 아이의 밤잠을 잘 재우는 기술, 그것도 일찍 재우는 기술이지요. 어렵지는 않습니다. 딱히 피나는 노력을 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요. 그러니 독자님께서도 충분히 할 수 있어요.

  She can do? He can do? WHY not me?

  우리 집 아이도 일찍 잘 수 있습니다.


  비법을 자세히 풀자면 말이죠. 먼저 아이가 하나든 둘이든 셋이든 저녁 밥상을 치우고 나서부터는 얼른 잘 준비합니다. 설거지는 나중에 하세요. 아이가 잠든 후 드디어 찾아온 혼자만의 시간을 설거지로 시작하더라도 설거지에는 몇 분 뺏기지 않더라고요. 그리고 그 시간의 즐거움과 소중함도 크기가 줄지 않고요. 그러니 평소에 싱크대 속에 설거지거리가 쌓여 있는 것을 못 보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눈 감고 얼른 양치를 하고, 이부자리부터 펼치세요.


  양치를 하고 잠자기 전 책 읽기까지 마쳤다면 이제 얼른 누워요. 깊은숨을 쉬며 인내를 마음 깊은 곳에 가득 담고 말이죠. 아이와 하루 동안 못 나눈 이야기가 있다면 나눠요. 아니 정정할게요. 아이가 할 말을 다 하고 기분 좋게 잘 수 있도록 우리는 귀 기울여 들어주기로 해요. 아이의 이야기 끝나갈 때쯤 혹은 그보다 먼저 나의 인내심이 바닥에 닿았다면 지금부터는 말수를 줄여야 합니다.

  욱하는 마음에 "빨리 자!!!!"라고 소리를 지르기라도 한다면 지금까지의 노력이 모두 물거품이 되어 버리거든요. 엉엉, 울음보를 터트리기라도 한다면 평화로운 밤만 깨질 뿐이에요.


  고비 너머에 있는 고진감래의 달콤함을 떠올려보세요. 주의할 점은 머릿속에 있는 그 달콤한 향기를 절대 몸 밖으로 티를 내서는 안됩니다. 잠 들 뻔한 아이의 호기심이 다시 열릴지 몰라요. 잠자기 전의 모두 대화가 멈추면 이제 하품을 하는 연기를 시작합니다. 최대한 자연스럽게 말입니다.

  "하아~~~ 암."

  어머나! 전 이 글을 쓰면서 벌써 하품을 하고 말았네요. 하품은 정말 전염이 잘 된다니까요. 처음에는 하품이 잘 나오지 않을 수도 있어요. 그럴 때는 입을 크게 '아'하고 벌리세요. 크게, 크게, 더 크게요. 아마 다섯 번쯤 시도를 한다면 하품이 빵! 하고 터질 겁니다. 간절하면 결국 이루어진다잖아요. 이제부터는 연달아 하품하기 스킬도 자동 추가가 됩니다.


  "하아~~"

  하품하기에 몰입하다 보면 어느 순간 새근새근 잠든 아이의 숨소리가 귀에 꽂히는 순간이 있을 거예요. 바로 '우리 집 아이도 일찍 잠들 수 있다'가 현실이 된 순간이죠. 몸을 오른쪽, 왼쪽으로 돌려 보아도 아이가 인기척을 느끼지 못한다면 살금살금 방을 나와도 됩니다. 미션 성공!

  만석의 싱크대를 못 보는 저는 먼저 설거지를 글을 쓰거나 일을 하며 여유로운 밤을 즐깁니다.

  이 필살기의 진짜 주의사항은 하품 연기를 하다 제가 그 연기에 흠뻑 취해 아이보다 먼저 잠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저도 이미 여러 번, 저의 실감 나는 연기에 꿈나라로 날아갔지요. 그래서 저는 제가 수면 유도 전문 연기파 배우인 줄 알았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엄마의 하품 연기에 잠이 들던 아이는 열 살이 되었어요. 어느 여름밤, 아이가 잠이 들 때까지 옆에 있어달라고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그래서 팔베개를 하고 나란히 누워 우리들의 별빛 대화를 이어갑니다.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눴는데, 이 녀석이 잠이 안 온대요!

  "잠이 안 오면 억지로 가야 된다고 생각하지 말고 그냥 눈 감고 있어. 옆에 같이 있을게."

  둘째 아이는 자야 되는데 잠이 안 오는 날에는 속상한 마음이 들어 운 적이 있습니다. 그 마음을 몰라주고 빨리 자라고 이야기를 하면 섭섭한 마음이 드는지 눈물을 그렁그렁 붙이고 있다가 엉엉 우는데, 그때는 중요하지도 않은 일로 아이를 울린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그래서 이제는 최대한 마음을 편하게 해 주려고 노력을 하고 있어요.


엄마, 옆에서 하품 좀 해줄 수 있어?   


  

  어머나!

  나만 아는 너를 재우는 기술을 설마, 너도 알고 있었니?


  "엄마가 하품하면 나도 자꾸 하품이 나오더라."

  - 응, 맞아. 엄마의 수면 유도 기술의 효과야.


  "그러다 보면 나도 모르게 잠이 들어."

  - 그래, 엄마의 수면 유도 기술의 성과지.


  엄마의 연기를 너도 눈치챘어?

  엄마의 연기는 어땠니?

  좀 자연스러웠어?

  깜박 속았어?


  오늘도 밤 10시에도 엄마의 하품 릴레이 쇼가 펼쳐질 예정입니다.

  오늘도 명연기로 아이들을 꿈나라로 인도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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