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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지개인간 Sep 04. 2024

이 소식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으면

우화 한 나비

안녕, 나는 나비!


  나는 나비 (A Flying Butterfly) (youtube.com)


  나의 반려 애벌레는 이제 나비가 되었습니다. 나비가 되었다는 것은 우리의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고작 반나절만 남았다는 의미이지만 그래도 반려 인간은 나비가 예쁘게 날개돋이를 해서 좋습니다. 조심스레 머리부터 내밀며 세상에 나온 나비가 비단장수처럼 오색의 날개를 활짝 펼치면 그제야 반려 인간은 '어쩌면 자연의 섭리를 거슬렀다'는 죄책감에서 벗어납니다. 진정한 배려는 내가 아니라 상대방의 입장과 마음을 헤아리는 것에서 시작한다면, 나비에게 사랑과 정성을 쏟는 일은 내가 좋아하는 것일까, 자연과 다음 세대를 위한 일이었을까 늘 고민을 하기 때문이지요.


  나비는 보통 이른 아침, 대략 7시쯤에 날개돋이를 합니다. 엉덩이를 씰룩씰룩 거리며 번데기 껍질과 자신을 분리시키다가 준비가 완료되면 머리를 힘껏 밀며 세상에 나옵니다. '힘껏'이라고 해서 우리가 아는 '끙, 으응'과 같은 소리는 내지 않습니다. 아주 고요하고 경건한 움직임이라 바로 앞에 있어도 계속 지켜보지 않으면 그 장면을 볼 수가 없지요. 말이라도 좀 해주던가 '삐리리'라며 소리를 내던가 알려주면 좋겠는데 이럴 때는 참 아쉽습니다. 조용히, 누가 알아주든 말든 묵묵히 맡을 일을 하며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사람들처럼 말이지요. 이 반려 애벌레를 대하듯 사랑에게도 애정을 담은 마음과 관심을 놓지 않아야겠습니다.


호랑나비 우화 과정(날개돋이) 8배속 @무지개인간


  반려 애벌레를 키우는 과정에서 몇 번의 위기를 겪지만 날개를 서서히 펼치는 순간은 모든 성장 과정을 통틀어 절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약 5분에 걸쳐 이루어지는 날개돋이 과정에서 날개를 제대로 펼치지 못할까 봐 두렵기 때문이지요. 이 순간은 50분이라도 해도 모자랄 정도로 여러 감정이 뒤섞입니다.

  '괜히 키웠어. 다 자기가 알아서 사는 건데.'라는 말은 목구멍까지 올라오고, 그래도 매년 놀랍고 신비로운 경험을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어 기쁘기도 합니다.


  마침내 호랑나비가 날개를 다리미로 편 듯 쫙 펼치면 그제야 복잡했던 감정들도 보따리를 싸서 싹 사라져 버립니다. 이렇게 예쁜 모습을 보여줘서 고맙고 기쁠 뿐이죠. 세상에 갓 나온 호랑나비는 날개가 젖어있어 아주 무거워합니다. 그래서 '무겁냐? 나도 (내 인생의 무게가) 무겁다'라는 담백한 위로를 건네고 날개가 충분히 마르도록 혼자만의 시간을 선물하면 됩니다. 1시간 정도의 시간이 지나면 날갯짓을 하며 반려 인간을 부르는 호랑나비를 만날 수 있습니다.


  어쩜, 이렇게 예쁠까!

  왜 많은 디자이너들이 자연에서 영감을 얻는지 알 것 같습니다. 정말 아름다워요. 아마 인간이 나비를 먼저 그리고 신이 그림대로 나비를 창조해 주셨다면 우리는 이렇게 아름다운 자연을 만나지 못했을 것 같아요. 나비뿐만 아니라 가꾸지 않아도 알아서 자라는 잡초도 규칙을 가지고 잎을 내는 모습을 보면 참 놀라운 자연입니다.


  호랑나비는 날개가 어느 정도 마른 것처럼 보이지만 우화 후 약 2, 3시간까지는 잘 날지 못합니다. 그래서 손가락을 내밀면 여섯 개의 다리로 손가락 위로 올라와 나비의 한살이에서 가장 큰 애정을 반려인간에게  표현하지요. 이것이 어쩌면 절정과 위기를 지나 맞는 반려 애벌레와 반려 인간의 결말입니다. 해피엔딩.


  날개가 완전히 마르면 이제 우리는 헤어질 준비를 해야 합니다. 이른 아침에 나비가 나오면 오전 내내 날개를 말리고 오후가 되면 더 넓은 곳으로 보내줍니다. 아홉 살 어린이의 말처럼 강아지처럼 귀여워서 계속 같이 살고 싶지만 마지막 순간에 아름답게 돌아서는 것도 책임을 다하는 일이니까요. 올해도 일터에서 어린이들과 함께 호랑나비를 날려주었습니다. 좋은 경험을 느꼈는지 날아가면서 지형지물을 살피듯 몇 번이고 주변을 맴도는 호랑나비를 보며 과연 인간만이 감정을 느끼고 사고할 줄 아는 존재인가, 하는 물음표가 하나 생겼습니다.


  천천히 그것이 초점 속으로 들어왔다. 서로서로 가라앉지 않도록 띄워주는 이 사람들의 작은 그물망이, 이 모든 작은 주고받음-다정하게 흔들어주는 손, 연필로 그린 스케치, 나일론 실에 꿴 플라스틱 구슬들-이 밖에서 보는 사람들에게는 그리 대단치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그물망이 받쳐주는 사람들에게는 어떨까? 그들에게 그것은 모든 것일 수 있고, 그들을 지구라는 이 행성에 단단히 붙잡아두는 힘 자체일 수도 있다.
  룰루 밀러,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곰 출판

  

   시작은 우연이였지만 이 작은 생명체를 11년째 돌보는 이유는 자세히 보아야 보이는 알에서 시작하는 나비의 한살이가 지속되길 바라는 마음이 담겨있습니다. 작은 관심을 가지면 나비를 더 오래 이 행성에서 만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에서 말이지요. 그런데 알, 애벌레, 번데기, 나비로 자라는 과정을 보며 인간으로 살아가는 방법을 배웁니다. 관계 안에서 서로에게 보내는 애정과 짧은 인사 속에서 우리는 가라앉지 않고 단단히 설 수 있는 힘을 얻는다는 것을요. '서로'에 속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대단하지 않은 일처럼 보이지만 속한 사람들은 마음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혼자서 해낼 수 있는 일보다 함께라서 해낼 수 있는 일과 나눌 수 있는 마음이 훨씬 더 큰 것은 분명하니까요.


  그래서 오늘도 주고받는 작은 관심 속에 다정하게 반짝이는 빛을 담아야겠습니다. 나의 하루가 시간을 함께 해준 사람들 덕분에 더 풍성해졌다는 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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