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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지개인간 Oct 04. 2022

요가를 포기할 수가 없어!

이삿날이라 할 지라도

  "사모님, 내일 여덟 시까지 갈게요."

  "사장님, 일요일이라 아침부터 시끄럽게 하면 안 될 것 같아요. 아홉 시까지 천천히 오세요."

  

    첫 정이 무섭다더니 제주에서 만난 첫 집을 떠나는 일은 생각보다 어깨와 발걸음이 무거운 일이었다. 마음속 한 칸이 빈 듯한 기분이 드는 가장 큰 이유는 제주살이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준 이웃들과 아쉬운 작별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매일 만나 함께 티타임을 가진다거나 서로의 일상은 많이 나눈 것은 아니었지만 퇴근 후 집으로 돌아와 집 안을 환하게 밝힌다는 것은 '오늘도 잘 살고 왔어요.'라고 알리며, 타운하우스 공동체에 출근도장을 찍는 것과 같은 의식이었다. 아마 타운하우스에 남은 이웃들도 늘 그랬듯 한동안은 오며 가며 내 차가 있나 확인할 것이고 '아! 이 집 이사를 갔지.'하고 아쉬워할 것 같다. (그래도 진짜인지 확인하지는 말아야지.)


  이삿날이 되었지만 새벽 2시가 되도록 잠을 이루지 못했다. 해야 할 일들을 몇 번이나 확인하고 맥주 한 캔을 딴 뒤에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밤새워 달리는 기차를 타고 새벽 일찍 목적지에 내려야 하는 것도 아닌데 선잠을 잤다. 우선 거실로 나와 정리할 만한 것들을 조금 챙기고 있는데 7시도 안 된 이른 시간에 핸드폰이 울렸다.


  "무지개 인간아, 일어났구나. 집 앞인데 잠깐 나올래?"


  이웃 언니가 맥도널드 종이가방을 쥐여 줬다. 공항 갔다 오는 길에 사 왔는데 이사하기 전에 꼭 챙겨 먹으라고 신신당부를 한다. 우리는 앞마당에서 이러쿵저러쿵 이야기를 나누다가 헤어졌다. 나는 이 집에 살며 좋은 사람들도 참 많이 만났다.


  맥도널드 종이 가방을 식탁 위에 올려놓고 하던 정리를 마무리하고 시계를 보니 7시 28분이었다.


(아마도) 오백 가지의 마음

  

  쿵쾅쿵쾅... 사실 오늘은 주말 요가 수업이 있는 날이다. 그리고 나는 지금 몹시 피곤하다. 오늘따라 내 몸은 더 뻐근하다. 몸을 숙였다 폈다, 하는 것은 어쩌면 내 몸을 더 피곤하게 하는 일인 것 같다. 더군다나 오늘은 이삿날이다. 물론 잠들기 전까지는 이삿날에도 요가를 가고 싶었다. 마침 이사는 아홉 시부터 시작이다. 그러나 나는 지금 몹시 피곤하다. 내 몸은 오늘 숙여지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말도 없이 지각은 최악인 것 같다.

  

  차에 시동을 걸었다. 우리 집에서 요가원까지는 3분이면 도착하는 거리다. 지각이지만 조금 늦을 뿐이다. 아마 요가 선생님도 정시까지 기다리다 수업을 시작했을 것이다. 수업을 시작하고도 '오늘 왜 안 오실까?' 생각하며 기다리고 계실 것이다.


  7시 32분.

  요가 수업은 시작되었고 두 번째 동작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눈인사를 건네는 요가 선생님을 보니 오길 잘한 것 같다.


  '그럼 이사 준비는 다 했어?' 내 마음속에 사는 불안이 가 묻는다.
  '아니, 그런데 다 했다는 것은 애초부터 없더라고. 끝이 없어. 그냥 되는대로 맞춰 살래.' 내심 요가 수업에 가리라 마음먹고 있었던 태평이가 턱 끝을 비스듬히 들며 말한다.
  '그래, 이왕 온 거 마음 편하게 하자. 지금 와서 저는 오늘 못 올 것 같아 그 말을 하러 왔습니다, 라고 말하는 것은 웃기잖아.' 상황 판단을 잘하는 척척이가 태평이의 생각에 한 표를 보낸다.


  오늘 요가 시간은 순식간에 흘러갔다. 내 허리는 드디어 접히고 무릎도 이제야 조금씩 펴지는 것 같다. (나의 기분에) 내가 갑자기 우등생이 된 기분이 들었다. 분명한 것은 어제의 나를 뛰어넘은 것은 확실하다. 

  이삿날이지만 새벽 요가를 포기하지 않길 참 잘했다. 분명 요가 수업이 있다는 것을 알고 일찍 일어났지만 막상 시간이 다가오니 나도 모르게 그럴듯한 핑계를 찾으며 가지 않을 이유를 꼽고 있었다. 어쩌면 요가를 가기 위해 짐을 내리는 시간을 아홉 시로 잡은 건지도 모르겠다.

  매 순간 선택의 연속인 삶을 살고 있지만 내가 정말로 원하는 것을 알아차리는 일은 참 어렵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해 보라!" 해 보고 안 되면 그때 하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해도 괜찮다. 세상의 모든 도전과 시작은 반드시 깨달을 수 있는 선물을 큰 상자에 담아 주니까.




  많은 것을 채워 준 제주살이의 첫 집,  고마운 집에서 마지막 밤을 보내는 이야기는 첫 번째 안녕.(brunch.co.kr) 에 만날 수 있어요.   


  주말 요가를 시작한 지 3주가 되었어요. 아직은 염불에는 맘이 없고 잿밥에만 맘이 있는 요가 생활이 궁금하시면 요가를 등록했는데 (brunch.co.kr) 도 읽어 보세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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