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 첫 이사하는 날
내일은 제주에 살며 처음으로 이사를 하는 날이다. 신제주의 번화가에서 아주 외곽은 아니지만 15분 정도 떨어진 타운하우스에서 2년을 살았으니 이번에는 학교와 직장 근처 아파트로 이사를 결정했다. 연세 만기 3주를 앞두고 기적처럼 집을 구했고, 고민할 시간도 없이 이사를 결정하게 되었다. 지난주 동네 언니가 눈물을 보일 때도, 이미 소문이라도 난냥 얼굴이 안 보이던 동네 길냥이들이 몇 달 만에 인사하러 온 오늘 낮에도 뭐 사람 사는 곳이 다 똑같지 뭐,라고 무심한 척하며 이삿날을 기다렸는데 막상 D-Day가 몇 시간 앞으로 다가오니 마음이 갈팡질팡하다.
2년 전, 그저 '살아야겠다.'는 생각만으로 집도 보지 않고 계약부터 하고 보름 만에 이삿짐을 싸서 도피하듯 오게 된 제주의 첫 보금자리. 첫 정이 무섭다더니 오늘 밤에는 고향을 떠나는 것처럼 아쉬운 마음이 들어 내일 아침 해가 천천히 밝아오길 바라고 있다.
제주의 첫 집은 나에게 많은 것을 채워주었다. 살아야겠다는 나의 의지에 아름다운 자연을 통해 화답해 주었다. 그래서 집과 서로 마주 보는 한라산의 모습처럼 단단하게 나를 채워주었다.
2년 동안의 시간 중 집에 주는 가장 사랑스러운 순간은 2층 침실에서 맞는 아침이다. 커튼에 뚫린 별 모양 사이로 아침 햇살이 들어오면 '아침이 밝았구나.' 생각하며 눈을 뜬다. 그리고 커튼을 열면 창 밖으로 보이는 '작은 한라산' 어승생악과 눈을 맞추고 그제야 하루를 시작한다.
가장 오래 기억하고 싶은 순간은 9월에 만나는 늦반딧불이다. 저녁을 먹다가 집 안으로 몰래 들어온 반딧불이를 만나기도 하고, 저녁 식사 후 밤 산책을 하며 신비로운 불빛에 발걸음을 부지런히 쫓아가기도 한다.
가장 오래 기억에 남을 순간은 제주에서 맞는 첫겨울, 기록적인 한파와 폭설로 집에 고립된 날이다. 제설작업이 안 되는 지역이라 자동차가 다닐 수 있을 정도로 눈이 녹을 때까지 무려 일주일을 스팸과 김치로 버틴 잊지 못할 추억이 이 집에 모두 묻어있다.
그러나 내일 헤어지면 다시는 살지 못할 집이다. 퇴근하고 돌아오는 나를 까만 얼굴로 기다리며 반기는 집이지만 이제는 그럴 수 없다. 많이 아쉽지만 나는 알고 있다. 두렵고 때로는 귀찮은 마음을 던져버려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지금은 주저앉아 머무를 때가 아니라 변화를 인정해야 해야 한다. 적당한 때에 적당한 보금자리가 짠! 하고 나타났다는 것에 오히려 감사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해야겠다.
제주의 부동산 문화는 육지와 조금 다릅니다. 요즘은 제주 1년 살이가 늘면서 부동산 문화가 변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래도 여전히 큰 차이가 나는 것은 연세 문화입니다. 제주는 월세 대신(요즘은 월세로 받는 임대인도 있어요.) 1년 치 연세를 한꺼번에 받습니다. 그래서 부동산 포털 사이트에서 월세 물건을 검색하면 금액이 어마어마하게 나와 놀랄 때도 있지요. 터무니없는 금액이라면 연세이고, 고개가 끄덕여지는 금액이라면 월세로 표기한 것이니 계산기를 두드려 보는 것도 좋습니다.
만약 제주살이를 꿈꾸고 있다면 제주 이웃들과 보내는 일상이 궁금하다면 삶을 정성껏 (brunch.co.kr) 로살짝 맛보시길 바랍니다. 좋은 이웃은 어디에서 존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