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을 채웠다.
말 그대로 어쩌다 요가를 시작했다. 꼿꼿한 내 body에 요가나 필라테스는 도저히 선택할 수 없는 괄호 밖 상품이라 생각하며 살았던지라 '요가를 한다'라고 밝히기가 참 부끄러웠다. 그러나 글을 쓰기로 마음먹은 김에 나의 과거 기록을 꺼내 보았다. 나의 운동 역사를 돌이켜보니 다행히 '어쩌다'는 아닌 것 같다.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닐 때는 체력장이라고 해서 1년에 한 번씩 기초 체력을 기록하는 날이 있었다. 다른 것은 그럭저럭 때로는 우수하게 해냈는데 늘 자신이 없었던 것은 '유연성'이었다. 낮은 디딤대 옆면에 발바닥을 붙이고 앉은 채로 다리를 쭉 편 뒤 허리를 숙여 닿은 손 길이를 재는 것이다. 그때 나는 선생님께서 올림해 주셔서 7cm가 나왔다. 진짜 젖 먹던 힘까지 다해 허리를 숙였기에 꽤 괜찮은 결과였다고 생각했는데, 어째 우리 반에서 나보다 덜 유연한 아이는 없었다. 그렇게 꼿꼿함을 내 신체적 특징으로 받아들이며 살아왔다.
내가 줄넘기, 고무줄놀이, 오자미 놀이(어릴 적 우리 고향에서는 '오재미'라고 불렀는데 헝겊 주머니에 콩 등을 넣고 공처럼 만든 콩주머니의 일본어라고 한다.), 발야구 등 놀이로 하는 활동 외에 내가 돈을 주고 운동을 배운 것은 회사를 다니면서부터이다. 몸의 뼈 마디는 뻣뻣했지만 기본 체력은 좋았던 탓에 운동의 필요성을 알지 못해서 돈을 내고 운동을 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기도 했다. 어쨌든 회사에서 여가 활동으로 운동을 등록하면 금전적 지원을 해줬고 그래서 생애 첫 에어로빅을 시작했다.
처음 간 에어로빅 학원은 구 시가지의 오래된 건물 5층에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목욕탕 탈의실을 연상시키는 옷장들이 한 면에 있었고 반짝이 큐빅과 스팽글이 달린 원색의 에어로빅 의상들이 '입어 보고 싶지?' 묻는 듯 입구 문이 열릴 때마다 살랑거리며 흔들리고 있었다. 에어로빅은 기대 이상으로 큰 재미를 주었다. 태어나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몸매가 예쁘다'는 칭찬을 받았다. 비록 지금 생각해 보니 우리 에어로빅 학원에는 거울이 한 쪽면에만 있었고 내 모습이 제대로 보일 리도 없었다. 그저 선생님의 "잘한다! 잘한다! 좋아! 그렇지!"라는 흥겨운 추임에 맞춰 자신감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회사를 이직하기 전까지는 나는 반짝거리고 찰랑거리는 빨간 에어로빅 복을 입고 즐거운 유료 운동에 빠졌다.
그 후 한 15년을 쉬고 다시 시작한 운동은 만보 걷기였다. 100일 동안 만보를 걸으며 기초 체력을 쌓고 요가를 시작했다. 내가 무언가 새로운 것을 시작할 때는 그 결정을 늦은 밤과 새벽에 즉흥적으로 하는 경우가 많은데 요가를 등록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자주 가던 채식 카페에서 새벽 요가반을 연다는 소식을 들었고, 바로 등록을 했다. '요가가 재미있을까, 내가 잘할 수 있을까' 고민은 일절 없었고, 새벽 루틴을 가져야겠다고 마음먹었고 마침 시간이 맞았기에 순식간에 회비를 계좌 이체했다. 별 거 없는 시작에 비해 첫 수업 때 받은 느낌은 참 좋았다. 능숙한 수련자인 요가 선생님의 배려와 안내로 당기고 아픈 지점의 한계를 점점 좁혀가며 두 달째 이어가고 있다.
물론 60분의 요가 수련 시간이 늘 평화롭지만은 않았다. 최대한 집중하려고 애썼지만 환절기 아침에 콧물이 흐른다던가, 요가가 끝나고 이어서 다른 일정이 있으면 마음이 조급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런 외부의 방해들로부터 호수처럼 고요한 마음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다만 여전히 근육의 한계점을 여러 번에 걸쳐 만나면 솟아오르는 화를 마주하게 된다. 그러면서도 화를 표현하기보다 호흡으로 속도를 조절하며 내 안의 공간을 넓혀가는 것. 그것이 요가 2개월 차, 요린이('요가+어린이'로 요가 초보 수련생이란 뜻이죠.)가 생각하는 요가의 매력인 것 같다.
행복한 독자님, 이렇게 글로 만나게 되어 영광입니다.
오늘 글에서는 요가만 적었지만 요가와 함께 축구도 시작했어요.
축구의 이야기는 조금 더 재미를 붙인 뒤 적어볼게요.
요가보다는 다른 것에 관심이 더 가던, 요린이의 시선은 요가를 등록했는데 (brunch.co.kr) 에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