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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지개인간 Oct 19. 2022

어떻게 하면 글이 재미있어질까?

유머 패치가 필요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재미있는 사람이고 싶었다. 내가 말을 하면 반 친구들이 빵빵 웃음보를 터트리는 그런 유머감각의 소유자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조용하고 부끄러움이 많은 아이였다. 속 마음으로는 살짝 재미있는 아이가 되고 싶었던 '그런 나'는 학년이 바뀔 때마다 운이 좋게 '그런 친구'를 한둘씩 둔 덕에 약간의 대리 만족을 느낄 수 있었다. 서당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고 꽃이 진 자리에는 열매가 맺는다고 12년의 학창 시절을 돌이켜보니 웃긴 친구들 둔 덕에 (감사하게도) 어쩌다 내 유머가 빵 터진 날도 있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일이었다. 점심시간이 막 끝난 5교시, 여학생들의 무거운 눈꺼풀과 책상에 닿을락 말락 고개 숙여 인사하는 모습이 수업 내내 불안하셨던 선생님께서 갑자기 분위기를 바꿔 놓을 한 마디를 던지셨다.


  "지금부터 자기가 아는 가장 재미있는 이야기를 번호순으로 돌아가면서 발표하자!"


  듣기만 하던 5교시의 교실 풍경이 생동감 넘치는 입체형으로 바뀌었다. 21번인 나도 바빠졌다. 

친구들이 주로 어떤 유머를 선보이는지 파악해 보는 분석하는 자세
그럼 나는 어떤 난센스 퀴즈를 낼까 그동안 읽었던 유머집을 떠올려보는 생각하는 자세
혹시라도 내 유머가 앞 번호 친구와 겹치면 안 되기에 경청하는 자세
만약의 비상 상황에 대비해 유머를 하나 더 찾아놓는 준비하는 자세

  인간의 능력을 다면적으로 잘 섞어 쓰느라 손바닥에서는 땀이 났다.


  "경식이네 집에는 아들이 일곱 있었는데, 첫째는 빨, 둘째는 주, 셋째는 노, 넷째는 초, 다섯째는 파, 여섯째는 남, 그럼 마지막 일곱째는 이름이 뭐게요?"와 같은 난센스 퀴즈는 이미 8번쯤에서 'sold out'이 되었다. 마지막 남은 나의 '웃긴 이야기'는 무슨 일이 있어도 내 번호까지 무사히 와야 했다. 20번 수정이가 낸 퀴즈에 반 친구들이 와르르 웃고 이제 나의 차례가 되었고 내 얼굴은 한여름 태양처럼 활활 타올랐다. 피할 수 없으면 이왕이면 잘 웃겨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오늘 합기도를 가르쳐 줄게!


  평소 체육 시간에 두각을 나타낸 적 없는 내가 합기도를 가르쳐 준다니 33명의 시선이 모두 나에게 쏠렸다. 저 눈빛들을 만족시켜야 했다. 10초 간의 침묵을 지킨 후 오른손 검지를 입술 위에 댔다. 그리고는 유머의 성공을 기원하며 힘차게 말했다.

합!

  친구들의 눈이 더 동그레진 것을 확인하고 바로 다음 동작을 이어갔다. 두 손을 모아 손바닥을 붙이고 손가락이 위로 향하게 해서 가슴 높이만큼 올렸다.

기도!

 

   친구들이 빵 터졌다! 나도 기뻤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뿌듯함과 성취감을 맛보았다. 쉬는 시간이 되자 친구들이 몰려와 어디서 배운 거냐고, 사이코다운('싸이코'는 그 시절에는 유행하는 단어였어요. 검지와 중지 사이에 코를 넣어 '사이'+'코'라는 제스처를 취하기도 했어요. 그 시절의 뜻을 찾는다면 '특별한, 개성 있는'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유머라고 한바탕 웃음꽃을 피웠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내가 기억하는 게다가 내 유머가 만족스러웠던 학창 시절의 처음이자 마지막 유머였다.


   도대체 유머라는 것은 어떻게 얻을 수 있는 것일까? 얼마 전 어느 작가와 줌 토크쇼를 함께 했다. 유쾌한 글을 잘 쓰시는 작가님은 그 비결을 묻는 질문에 '그냥 써라! 당장 써라!'라는 지극히 평범한 비법을 알려주셨다. 좋은 글도 써보고 별 볼 일 없는 글도 쓴 덕분에 웃긴 글도 쓸 수 있는 것이라고 하시며. 대신 토크쇼의 후반부에는 '사람은 자기 자신을 희화하면 기쁨이 가장 크다. 탈도 없고.'라는 특급 비밀도 풀어주셨다. 내가 아는 또 다른 작가도 '내 글을 다른 사람이 재미있게 읽어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고 한다. 왜 사람들은, 이것은 너무 광범위하니 적어도 나는 내가 쓰는 글이 재미있길, 유머 감각을 갖춘 사람이길 원하는 것일까.

 

  얼마 전 읽은 <부자들의 인간관계>(스가와라 게이 지음, 쌤앤파커스 출판)에는 부자들의 사소한 습관 중 흥미를 끄는 재미있는 문장이 나온다. 

유머(humor)의 어원은 인간(human)이라는 설이 있다. 특히 영국인은 유머 감각을 높이 평가한다. 필요한 순간에 적절한 유머를 구사하지 못하면 '신사', '숙녀'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미국도 유머가 부족한 인물은 존중받지 못한다. 그래서 오바마 전 대통령은 농담을 전담하는 스피치 라이터가 있었을 정도다.  (47p.)

  다행히 나는 한국인이라 '숙녀'가 되지 못할까 걱정을 하지 않고도 나이가 차서 자동으로 숙녀(성인 여자를 아름답게 이르는 말)가 되었다. 시간의 노력으로 숙녀가 되었지만 이왕이면 재미있는 글을 쓰고 싶고, 유쾌한 유머를 할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는 생각은 여전하다.


  정답을 알 수 없으니 그저 열심히 써야겠다. 당장 쓰고, 그냥 쓰고, 매일 쓰다 보면 나의 유머가 내 안의 깊은 인간다움을 만나는 날에 빵 터지겠지. 유쾌하지만 가볍지 않은, 36.5도의 온기를 지닌 글을 쓰는 날이 오겠지. 



  요즘 들어 글쓰기에 대한 고민과 생각이 많아졌어요. 개인적으로 이런 시간을 참 좋아해요. 왜냐하면 이런 시간들은 결국 저에게 필요한 방향으로 삶을 이끌어주더라고요.

  올 가을 갑자기 깨달은, 글쓰기로 힘을 얻은 시간에 대한 이야기는  매일 쓰기의 힘 (brunch.co.kr) 에서 만날 수 있어요. 

  시트콤 같은 일상을 글로 재미있게 옮길 수 있도록 유머 패치를 갖출 수 있도록(^^) 계속 응원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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