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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지개인간 Nov 20. 2022

축구와 출근의 공통점

축구를 잘하고 싶지만 잘하지 못하는 '골때녀'의 시선

  그래도, 오늘도 축구팀 유니폼을 입고 축구공과 축구화를 챙겨 집을 나섰다. 축구장으로 가는 길에 초록불을 기다리는 신호 대기 중 문득 지금의 기분이 낯설지 않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갈등의 골짜기를 지나 큰 결심을 하고 산을 다시 오르는 기분.

  아하! 찾았다.


축구와 출근의 공통점 1. 시간이 참 빨리 간다.


  아침 시계가 더 빨리 돌아갈리는 절대 없지만 출근하는 평일의 아침만큼 축구 가는 날은 시간이 더 빨리 간다. 그래서 축구를 잘하고 싶지만 아직은 잘하지 못하는 사람은 '지금 시간이 꽤 있잖아.'생각하고 커피 한 잔을 하고 축구장으로 갈 생각을 했다가 시간에 쫓겨 허둥대며 축구장으로 튕겨 가야 하는 사태를 겪게 된다. 그러니 시간이 남는다면 소파에 앉거나 침대에 눕지 말고 그냥 가야 한다. 1등으로 간다고 축구 연습 더 시키는 것도 아니고, 1등으로 출근한다고 해서 일을 더 시키는 것도 아니니까. 하지만 1등으로 회사에 출근하는 것만큼 축구장에 얼굴을 비추는 것은 무척 부담스러운 일이다.


축구와 출근의 공통점 2. 그렇게 가기가 싫다.


  축구 가는 날 아침에만 시간이 날아가는 것은 아니다. 일주일도 정말 빨리 지나간다. 엊그제 축구를 하고 온 것 같은데 어라! 또 축구 가는 날이다. 몸은 천근만근이지만 축구공을 챙겨 부릉부릉 시동을 걸어 본다. 비록 내 발걸음은 무겁더라도 차는 일정한 속도로 달려 예정된 시간에 목적지인 축구장에 나를 옮겨준다.

  다만 콧노래 대신 '또 축구 가는 날이네!'라는 생각이 든 것을 보니 아직은 회사에 출근하는 마음과 같다. 오늘따라 나는 집순이가 좋은데 출동 시간은 더 빨리 다가온다.


축구와 출근의 공통점 3. 하지만 받아들인다.


  목요일 오전에는 축구장에 가는 날이기 때문에 정말 미룰 수 없는 일이 아니면 축구장으로 간다. 대신 오늘의 축구 수업이 끝난 목요일 오후부터 다음 축구 수업인 다음 주 목요일 오전까지 혹시라도 내가 잊은 약속은 없는지, 지금 내 몸의 상태가 팀원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을지 살핀다. 출근하지 못할 핑계를 아무리 찾아도 못 찾는 것처럼 온 마음을 모아 축구를 가지 않을 핑계를 찾아보아도 내가 갈 곳은 축구장 뿐이었다.


축구와 출근의 공통점 4. 인생의 깊이를 키운다.


  축구 수업을 '땡땡이'칠 생각을 거듭하다 보면 본질을 찾기 위한 질문에 접근하게 된다.

  '왜 나는 축구를 하는가?'

  '축구를 통해 내가 이루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삶을 통해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을 완성해 가기 위해 애쓰듯 초보 축구인은 질문을 통해 안 갈 이유 열 가지 대신 이왕이면 열심히 하고 싶은, 꼭 가야 할 이유 한 가지를 찾고 있다. 그 이유가 딱 하나라고 해도 즐겁게 축구를 하기에는 충분하기 때문이다.


축구와 출근의 공통점 5. 집으로 가는 길은 뿌듯하다.

  

  출근길의 풍경은 별 감흥이 없지만, 퇴근길은 살아 움직이는 감동으로 가득 채워진 것처럼 축구를 다녀오는 길도 그렇다. 하늘 아래 풍경은 뜨거운 심장이 뛰는 소리만큼 사랑스럽다. 혼자가 아니라 함께 하는 운동을 통해 얻은 소중한 삶의 가치들은 달아오른 볼과 욱신욱신한 팔다리의 작은 근육들 사이에 쏙쏙 스며있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 살아 있다는 것이 가장 큰 감사임을 깨닫게 된다.


  비슷한 시기에 시작한 요가와 달리 축구는 여전히 마음을 챙겨서 해야 하는 운동이다. 정적인 삶을 지향하는 편이라 결이 다른 축구는 그만 둬도 아쉬움이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축구를 계속해야 하는 이유를 찾으며 매 수업에 참여하는 것은 평소와 다른 속도로 흐르는 에너지가 즐겁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년에는 꼭! 친선 경기에서 우수선수가 되겠다고, 반짝이는 트로피를 손에 번쩍 드는 상상을 해 본다. 할 수 있다. 나만 포기하기 않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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