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축구팀에 들어갔다.
'어쩌다 요가'보다 더 물음표 백 개의 동기로 축구를 시작했다. '어쩌다'의 시작은 4월부터 매일 만보를 걷으면서부터이다. 도통 이웃을 만날 수가 없었던 드문드문 지어진 단독주택들이 있는 동네인데 우연히 취미가 같은 동네 언니를 인스타그램으로 만나면서 시작되었다.
"만보 걷기 100일 채우면 그다음에는 뭐 할 거야?"
"아직 계획은 없어요. 우선 한라산 백록담에 다녀오고..."
"그럼 축구해 볼래?"
'축구, 내가 구기 종목에 조금이라도 두각을 나타낸 적이 있었던가.' 곧바로 대답을 하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사이 내 안의 긍정 자아는 가장 뿌듯했던 순간을 꺼내 주었다.
교복이 파란색이라 '스머프'라 불리던 여고 시절의 체육 실기 시간. 그날의 실기 종목은 바로 농구였다. 체육 선생님께서 정해주신 지점에서 농구 골대를 등지고 서서 농구공을 뒤로 던져 골을 넣으면 만점이었다. 기회는 세 번이었다. 그날 나는 온 우주의 기운을 끌어모아 농구공을 던졌고, 한 번만에 골을 넣어 친구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다. 행운의 농구공 덕분에 그 학기의 체육 실기시험을 만점 받았다.
'농구공과 축구공은 비슷하니까 할 수 있겠지?'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축구를 하자고 부추겼다.
동네 언니와 이야기를 나누고 이틀 뒤, 생애 첫 여자 축구단에 들어가게 되었다. 축구공과 축구화, 무릎보호대, 축구양말까지 -시작했는데 하기 싫어지면 안 되니까 도구부터 투자함- 싹 챙겨서 첫 수업을 갔다. 엄마들이 모여서 만든 축구팀이라고 했으니까 아주 편안하고 부담 없는 마음으로. 게다가 감독님께서 오늘 처음 오는 사람이 한 명 더 있다고 하셔서 축구 동기까지 생겼으니 의지하며 지내면 되겠다 싶었다.
프로 선수들의 수업만큼(하하, '프로'선수라는 것은 제 기준이긴 합니다만, 감독님의 표현이기도 합니다.) 단 10분의 쉬는 시간만 가지고 바쁘고 빠르게 돌아갔다. 가벼운 몸풀기로 축구장을 3바퀴 뛰고, 맨몸 체조를 했다. 그다음부터는 축구 기술을 하나씩 익히는데, 만보 걷기와 한라산 등반은 운동이 아니었던가, 싶을 정도로 땀이 한여름 소나기처럼 흐르고 숨이 차올랐다. 마지막 40분은 미니 게임으로 팀을 나누어 경기를 했는데, 회원들은 마치 실전에 참가한 듯, 아주 죽자고 열심히 했다. 아, 나도 아주 죽을 맛이었다.
신호등 빨간 불이 켜지고 신호 대기 중에야 그나마 오늘은 신입 회원을 위한 배려로 안전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젊은이들의(20대) 배려 덕분에 설렘으로 가득 찼던 시작할 때의 마음이 활활 불타는, 열정의 축구장에서 완전히 타지 않고 살아남았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아직 꺼지지 않은 불씨를 보며 안도할 수 있었다.
집에 오니 거울 속에는 빨갛다 못해 하얗게까지 질린 내가 있었다.
'살면서 이렇게 미치도록 달려보고, 거칠게 몸을 부딪혀보며, 심장 뛰는 일을 해 본 적이 있던가?'
그래, 오늘 나는 죽을 만큼의 최선을 다했다. 그제야 속옷까지 흠뻑 젖신 땀방울이 귀하게 느껴졌다.
그래도 다음 주 이 시간, 다시 축구를 갈 것인가는 매우 진지하게 고민해 볼 일이다.
안녕하세요, 반가운 독자님.
원래는 다른 제목으로 글을 쓰고 있었는데, 처음 시작할 때로 돌아가버렸어요.
덕분에 글을 쓰며 '나의 축구 일기'를 정리하게 되었네요.
음, 저는 아직도 공이 지나간 다음에 발을 휘두르는, 뭐 그런 축구 회원입니다.
유니폼을 입을 사진을 찾고 싶었는데, 못 찾았어요. 다음 글에는 멋진 유니폼 사진을 올리고 싶네요.
등 번호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고요. 하하.
축구와 함께 시작한 요가 이야기는 요가를 등록했는데 (brunch.co.kr) 에서 만나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