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살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되어
내가 기억하는 어린 시절은 아홉 살부터 시작되었다. 아홉 살의 나는 도산서원에 발령을 받은 아버지를 따라 정산(경북 안동시 예안면 정산리)에 살았는데, 그곳은 호기심 많은 모험가에게 아주 잘 어울리는 매력적인 시골 마을이었다. 명절이나 일을 보러 시내에 나가기 위해서는 커다란 배를 타야 했는데, 선착장에 도착하면 달리던 버스에서 내려 대기 중인 배에 사람도, 승용차에 버스까지 모두 옮겨 탔다. 그때 내가 멀미를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아주 넓은 호수와 그 중간에 새들이 사는 섬이 있었다는 것과 배의 속도만큼의 바람이 불었다는 것뿐이다. 스무 살이 넘어 그 호수가 안동댐인 걸 알기 전까지 동화적인 장면으로 가득한 곳이었다.
사실 내가 정산에 산 것은 1년이 채 안 되는 시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밀의 장소 같은 그곳에 관한 특별한 기억들을 여러 개 가지고 있는 것은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지우고 싶은 기억도 있다. 우리 가족이 정산으로 이사할 때 나는 2학년이었고 하필이면 1학기 중간고사를 치는 날에 전학을 갔다. 우리 담임 선생님은 기억으로 50대 초반처럼 보였고, 늘 콧구멍 사이로 코털이 두 세 가닥 삐져나와 있었다. 갯벌에 잠긴 듯한 목소리에 선생님께서 곁에 오면 쿰쿰한 냄새가 났는데, 어른이 된 뒤 술과 담배 냄새가 섞인 것을 알게 되었다. 그가 어떤 사람이든 한 반 밖에 없는 작은 학교이고, 나는 2학년이었기에 만날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내가 중간고사를 치르는 날 전학을 왔고, 선생님의 눈에는 피부가 희고 차분하며 세련된 외숙모를 둔 덕에 옷도 단정하게 입은 내가 꽤 똑똑한 모범생처럼 보였던 것이다. 진도가 맞지 않아 배우지도 않은 문제를 연달아 2개 틀렸을 뿐인데, 얼굴이 시뻘게진 선생님의 비난이 쏟아졌다.
"이거 똑똑인 줄 알았는데, 헛똑똑이잖아!"라며 말하고 내 손바닥을 내리쳤다.
손바닥의 아픔보다 헛똑똑이라는 태어나서 처음 듣는 말이 더 강하게 각인되었다.
다행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그 뒤로 그 선생님에 대한 기억은 없다. 1학년 때 선생님이셨던, 퇴직을 3년쯤 앞두고 계셨던 백옥선 선생님에 대한 기억-선생님의 얼굴, 목소리, 옷차림, 첫 국어 시간, 선생님의 동네, 선생님이 타고 다니시던 차 등-은 지금도 생생하지만 2학년의 선생님은 그 하루뿐이다. 그런 것을 보면 내가 아는 기억은 자기애가 뛰어난 뇌의 선택적 망각의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아픈 기억에도 불구하고 어릴 적을 묻는다면 나는 아홉 살 때로 돌아간다. 정산에서의 하루는 많은 부분에서 '처음'이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다. 책으로만 보던 가재를 잡으러 친구들과 계곡의 돌을 뒤집으며 다녔고, 비가 내리면 비를 맞으며 달팽이를 찾으러 다녔다. 봄에는 개구리알을 찾겠다고 도랑을 헤집고 다녔고, 내가 처음으로 꿀벌에게 쏘인 것도 정산 집에 머물러있다. 아침 일찍 일어나 개미굴을 파며 알과 번데기를 관찰한 것도, 매일 달라지는 텃밭과 과실수의 변화를 관찰하는 재미도 파란 지붕의 정산 집이 준 선물이었다. 또 정선에는 토실한 옆집 할머니네 똥개만 있는 게 아니라 사슴처럼 생겼지만 사나운 '치와와'라는 생명체가 있다는 것도 알았다. 뿐만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롯데 카스타드, 추억의 국찐이빵, 온 가족이 둘러앉아 보던 <사랑이 뭐길래>, 오후가 되면 우리 집 앞마당에서 해가 질 때까지 동네 아이들과 오자미(콩주머니) 던지기를 하며 뛰어놀던 기억도 정선의 기록의 일부였다. 아홉 살이 되기 전까지의 기억은 드문 드문 신호가 잡히는 낡은 흑백텔레비전 같지만, 아홉 살 기억은 선명한 컬러텔레비전에 채널도 여러 개나 되었다.
조금 더 의미를 더하자면 아홉 살이 되고부터 스스로의 힘으로 세상에 발을 내디딘 것 같다. 물론 부모님의 보살핌 아래 있었지만 경험을 존중해 주시는 두 분 덕에 내 손과 발로 하루를 채울 수 있었다. 가족과 친구들과 만든 추억, 채집 활동 등이 모두 나의 선택이고 그 결과물은 기억으로 고스란히 특별하게 남아있다.
두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되고 보니 내 경험이 기저가 되어 '아홉 살 인생'을 크게 생각하고 있다. 내게 아홉 살은 소중하고 중요했다. '백문이 불여일견'을 지켜주신 부모님의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두 아이를 키우며 아직은 내 품 안에 있지만 조금씩 펴는 날갯짓을 늘 응원하고 있다.
우리 집 두 어린이의 '어린 시절'은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각자 스무 살이 되면 제주에서 제일 높은 38층 타워에 가서 함께 칵테일을 마시기로 했는데, 지금도 많이 궁금하지만 참았다가 그날 물어봐야겠다.
그 사이 더 많은 도전 속에서 성공과 실패를 경험하며 더 빨리 나 답게 살 수 있도록 응원해줘야겠다.
아홉 살 인생,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