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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지개인간 Nov 07. 2022

너와 나의 아홉 살

1990년 2022년

  "엄마, 파는 왜 파일까?"

  아침 식사 중 초등학교 2학년인 겨울이가 물었다.

  아이의 기발한 질문에는 나도 아홉 살로 돌아가 꼭 창의적으로 대답해 주고 싶었다.

  "어떤 사람이 이게 뭘까 하다 한 입 먹어봤는데, 매워서 하늘을 보며 파, 하고 외친 거지. 그래서 파가 된 거야."

  나는 '몇 초만에 머리를 굴려 말한 대답치고는 꽤 괜찮네'라고 생각했다.


  "엄마, 그러면 '파'가 아니라 '퉤'가 되었을 것 같아."

  그러게 '퉤'가 될 뻔했는데, '파'라는 이름이 붙었으니 그나마 나은 건가. 우리는 하하 웃어버렸다.

  아홉 살 겨울이는 '잎은 둥근기둥 모양으로 속이 비고 끝이 뾰족하며 특이한 냄새와 맛이 있는 풀'(출처: 표준국어대사전)을 '파'라고 배웠지만,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왜?'라고 의문을 가진다. 


  "엄마, 나는 개구쟁이일까?"

  "'개구쟁이'의 뜻을 짓궂은 장난만 심하게 치는 아이가 아니라 활발하고 밝은 아이라고 생각한다면 엄마는 겨울이가 개구쟁이라고 생각해."

  "내 생각에는 나는 1학년 때는 개구쟁이였어. 친구들이랑 장난치는 것도 좋아하고 활발했거든. 그런데 2학년이 되어서는 아닌 것 같아. 나는 조용한 성격 같아."

  지난주에 반에서 제일 친한 친구가 전학을 간 뒤 겨울이는 쉬는 시간이 즐겁지 않은 모양이다. 그래도 심심하다거나 재미가 없다는 둥의 감정에 빠지기보다 나에게 이런 면도 있구나 알아가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다.

  '나는 어떤 아이일까?' 고민한 흔적을 보면서 우리 집 아홉 살 아이는 참 '멋진' 아이구나, 생각했다. 


  생각해 보니 겨울이와 마주 앉아 젠탱글을 할 때도 한참을 그리지 못하고 고민하는 나에게 겨울이는 이렇게 말했다.

  "엄마, 지금 주변에 있는 물건을 보면서 그려봐."라고 말하면서 시계는 이렇게, 창문은 이렇게 그려보면 좋겠다고 시범을 보인다.

  엄마인 내 눈에는 여전히 작고 귀여운 꼬마는 무겁고 부담스러운 태도 대신 쉽게 생각을 풀어가며 그 답을 찾아낸다. 그래서 때로는 인생 2회 차가 아닌 가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나에게 아홉 살은 특별했다. 내가 기억하는 가장 행복했던 어린 시절이 그 안에 가득 들어 있기 때문이다. 봄이면 개구리알을 찾는다며 집 앞 도랑을 수시로 들락거렸다. 그러다 개구리알을 검은 봉지에 한가득 채집해 마당 한 구석에 뒀다가 아무것도 모른 채 봉지를 열어 본 엄마를 깜짝 놀라게 했다. 양지에 둔 검은 비닐봉지 안에는 도롱뇽의 알이 가득했고, 부화해서 나온 도롱뇽 새끼 몇 백 마리가 바글바글했기 때문이다. 비가 오는 날에는 책에서 본 왕달팽이를 잡겠다고 고목 사이를 헤집고 다니며 온 산의 달팽이를 잡아온 일, 나뭇가지인 줄 알고 밟았는데 굵은 뱀이라서 등골이 서늘해진 일, 가재를 잡겠다며 학교를 마친 뒤 친구들과 아까시꽃이 핀 계곡을 따라 바위를 뒤집고 다닌 일 등 천방지축 소녀가 나의 아홉 살에는 담겨 있다. 


  나의 아홉 살과 겨울이의 아홉 살은 결이 다르게 느껴진다. 책가방을 던져 놓고 콩주머니나 제기를 들고 동네 친구들을 만나러 나간 나의 아홉 살처럼 겨울이도 학교를 마치고 놀이터로 공원으로 가서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껏, 실컷 놀고, 또 놀며 아홉 살에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을 모두 누리면 좋겠다. 비록 '라떼'와 달리  요즘 애들은 바쁘고 할 일도 많지만 말이다. 

  그래서 어느 날 문득 물어보았다.

  "겨울아, 겨울이는 행복해?"

  "응, 물론이지. 나는 어디 안 나가고 지금처럼 집에서 쉴 때가 제일 좋더라."

  해 질 녘까지 뛰놀던 나와 집이 좋다 너, 아홉 살의 우리는 추억은 '평행선'이지만, 그 안에서 얻은 감정은 '합동'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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