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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지개인간 Sep 27. 2022

콩밭 메던 열여덟과 콩밭 할매

그리운 나의 할머니

           

  칠갑산, 세 글자가 칠판에 적혔다.

  “나는 수업 시작 전에 이 노래를 몇 명한테 시킬 거라. 그러니까 지금부터 연습해.”

  고2 첫 지리 시간, 34명이 내뿜는 당혹감에 선생님께서는 얼른 말씀을 이어가셨다.

  “별거 없어. 구슬프게 부르면 돼.”

  나는 노래도 자신이 없었지만 ‘선생님, 전 못해요.’라고 이야기할 용기도 없었다. 대신 그날 오후 레코드 가게에 들렀다.     

  “코 홍 바앗 메헤는~ 아아나악네에에야아아~~”

  을지 악보에서 나온 500원짜리 노란 종이를 펴고 피아노 앞에 앉아 이삭 대신 콩밭을 메는 나를 상상하며 음을 확인했다.

  전람회의 <취중진담>을 듣던 동생이 한 달째 콩밭을 메는 나를 보며 말했다.

  “언니! 왜 그래 콩밭을 메는데?”

  ‘쪽팔리기 싫어서!’라고 대답하고 싶었지만, 구구절절 길어질 것 같아 계속 콩밭을 메었다.

  “언니 딱 보니까 사춘기네. 열심히 해.” 동생은 대단한 발견을 한 듯 엄마에게로 달려갔다.

  나의 1학기 지리 시간은 선생님이 무섭거나 시험을 자주 쳐서가 아니라 노래를 못 부른다는 얼토당토않은 이유로 긴장의 연속이었다. 다행히 21번인 나는 입에 착 붙는 단골 출석번호가 아닌 덕에 무사히 칠갑산의 덫을 비껴갈 수 있었다.          

  여름의 어느 저녁, 텔레비전을 보고 있던 동생이 “언니! 텔레비전에 언니가 좋아하는 노래 나온다!”라며 불렀다. H.O.T 오빠들인가 싶어 달려갔더니 화면에는 ‘칠갑산’이라는 자막이 막 사라지고 있었다. 

  “야! 난 이 노래 안 좋아해!”라고 말했지만 나도 모르게 얼마나 구슬프게 부르는지 경청하고 있었다. 다음에는 여가수의 음정으로 들어보고 싶었다. 어느새 콩밭 메는 노래는 열여덟의 가슴에 스며들었다. 비록 갈고닦은 실력을 선보일 기회는 오지 않았지만, 이 세상에 쓸모없는 일이 어디 있는가!


  “할매! 나는 할매를 보면 생각나는 노래가 있데이.”

  “뭐어? 노루가 있다꼬?”

  “아니! 노래말이다. 노! 래!”

  “무신 노래?”

  할매는 가을이면 바싹 마른 콩나무를 뿌리째 뽑아 활활 타오르는 불 속에 넣어 콩서리를 해 주셨다.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콩나무가 새까맣게 변하면 후후 불씨를 날려가며 검고 거친 손으로 까만 콩을 내 입에 넣어 주셨다. 올해만 하고 힘들어서 콩 농사를 그만두겠다던 할매는 늦은 봄이면 다시 종자 콩을 사 오셨다. 땡볕에 콩밭이 가물어질까 화투치기도 마다하고 물을 주던 할매는 이제 94세가 되셨다.     

  점점 기억을 잃어가는 할매를 보면 소소한 이야기라도 꺼내 기억의 불씨를 살리고 싶어졌다.

  “할매, 옛날에 밭에 콩 심가놓고 우리 콩 구워준 거 기억나나?”

  “안다. 저 옛날에 내가 콩 심갔지.”

  요양병원 의사의 말과 달리 우리 할매는 기억력이 좋았다. 그때도 할매는 이듬해 봄이면 지난가을의 말을 다 잊고 또 콩을 심었다.

  “코옹 바핱 메헤느으은 아아나악네에에야아~”

  “니 그른 노래 어데서 배았노? 잘하네.”

  ‘할매, 내가 열여덟부터 연습한 노래다. 내한테 잘해줘서 고맙데이.’





  산책을 다니며 익어가는 콩나무를 보니 생각이 나서 꺼내 보는 예전에 쓴 글이다.

  계절 속에 추억을 담아 두는 것은 참 좋은 일인 것 같다.

  바쁘게 살다가도 어김없이 다시 그 계절이 찾아오면 잠시 추억할 수 있으니까.

  할머니는 작년에 돌아가셨다. 

  콩서리를 해 주시던 할머니는 이미 오래 전 나의 어린 시절에 멈춰있다.


  + 사투리를 모르는 분은 댓글 달아주세요. 통역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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