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지개인간 Mar 21. 2023

머리카락을 기르는 이유

긴 생머리의 여자

  지금 제 머리는 가슴선 아래까지 내려왔어요. 아마 살면서 가장 긴 머리카락을 지금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사실은 스무 살 무렵에도 긴 생머리를 한 것 같은데, 어깨와 가슴선 사이였는지 아니면 더 길었는지 긴가민가합니다. 생각해 보니 국민학교 시절에도 머리가 길었어요. 하지만 우리 엄마는 머리방울 하나로 튕! 고무줄이 터질 것처럼 꽉 묶어주셔서 긴 머리에 대한 추억은 없네요. (나중에 엄마의 이야기로는 머리숱이 너무 많아서 하나 묶는 것도 힘들었다고 하셨어요.) 중학교 때는 교칙이 엄격한 학교라 귀밑 3cm의 아주 짧은, 예쁜 방향으로 상상을 돕는다면 '아나운서 스타일'이라고 해두죠. 어쨌든 아주 짧은 헤어 스타일을 유지했어요. 고등학교에 올라가니 조금 더 기를 수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드라마틱한 허용은 아니었고요, 2cm가 늘어간 귀밑 5cm였어요.

  스무 살이 되고는 머리카락 길이에는 자유로웠지만 그것도 손재주가 있어야 예쁘게 관리가 되더란 말이죠. 처음에는 당시 유행하던 층을 많이 낸 울프컷도 해보고, 오렌지색으로 밝게 염색도 해봤지만 손질을 잘 못하니 늘 부스스하더라고요. 마침 제가 스무 살이던 2000년대 초에는 '고데기'라는 아주 신박한 헤어 관리용품이 가정에 보급되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그것도 기술적으로 잘 말아야 하더라고요. 안으로 말았는데, 나의 생각과 반대 방향으로 날아가는 앞머리를 눈앞에서 만나며 사실상 나에게 어울리는 헤어스타일을 아직 찾지 못했어요. 그리고 그 고민은 지구가 태양을 스무 바퀴나 돌도록 여전히 이어지고 있어요.


  제주도로 이사를 하고 정신없이 짐 정리를 하는 동안 밥도 잘 먹고, 잠도 잘 자고 했더니 머리카락도 쑥쑥 자라더라고요. 쇼트커트이던 길이가 귓등을 치고 어깨에 톡톡 닿으면서 이른바 '거지존(어떤 스타일링을 해도 예쁜 모양이 잘 나오지 않는 어깨에 닿는 애매한 머리 길이)'에 도착했어요. 계속 이렇게 살 수 없으니 정리를 한 번 해야 할 때가 되긴 했어요. 마침 동네의 초입에는 Y미용실이 있었어요. 동네 산책을 하다 정원에 핀 화초에 물을 주며 이 꽃, 저 꽃을 살피던 원장님의 모습을 본 적이 있지요. 게다가 그곳은 중산간에 있는 우리 동네에서 유일한 상업 시설이었어요. 사방이 주거 시설 밖에 없는 동네에 유일한 상업 시설이라 이사 오던 첫날부터 눈에 콕 박히긴 했어요. 나중에 원장님께 들은 이야기지만 9살에 이 동네로 이사를 와서는 50년이 넘도록 같은 자리에서 살고 계신다고 해요. 이 정도면 살아있는 역사이자 터줏대감 급인 존재인 거죠. 


  정성으로 화초를 가꾸시는 원장님의 손이라면 믿고 맡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뭐 이것도 근거는 없어요. 그냥 이곳저곳 따지고 알아보기는 귀찮으니 부디 '잘해주시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한 것일지도요. 그러기에는 신체 조건이 좀 까다로워요. 제 머리카락이 꽤나 까칠하거든요. 예전 미용실 원장님의 이야기에 따르면 겉은 직모인데 속은 반곱슬이라서 커트가 참 중요하다고 했어요. 그래서 커트만 잘하면 알아서 볼륨감이 살아있어 관리하기가 참 편한데, 커트가 잘못되는 순간 빨리 머리카락이 새로 자라길 빌며 '거울 없는 삶'을 살아야 마음 건강에 좋은 스타일이더라고요. 게다가 머리카락의 주인은 시키면 뭐든 조금씩 다 잘하는데 하나를 못 가졌어요. 바로 머리 묶기인데, 와 정말 이 분야로는 똥손이에요. 그래서 딸이 없다는 근거 없는 이야기도 있더라고요.

 

  아무튼 다시 미용실 이야기로 돌아가서, 낯을 가리는 저는 용기를 내서 낯선 곳으로 문을 열었어요.

  "안녕하세요. 머리 하러 왔어요."

  "어서 와요. 어떻게 해줄까요?"

  "사장님, 저 머리 기르고 싶은데 지금 좀 지저분해서 매직파마 하고 싶어요."

  커트를 할까 하다가 '매직 스트레이트(머리카락을 마술처럼 곧게 펴는 것)'를 해서 머리를 기르기로 했어요. 왜냐하면 커트를 하면 분명 2-3주 뒤에 또 거지존을 만날 것이고 그럼 미용실을 자주 가야 하거든요. 게다가 예전에 살던 동네에는 커트비가 8,000원이었는데, 그런 곳을 찾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요즘은 커트 비용이 기본 15,000원 정도에서 시작하죠. 그래서 펌으로 머리카락을 쫙쫙 펴고 이제는 머리카락을 기르기로 했어요. 어느 정도 긴 머리는 묶기에도 좋으니까요.


  Y미용실 원장님의 손만큼 입술의 움직임도 바빠집니다. 언제 이사 왔냐, 어디에 살고 있냐, 어디에서 왔냐, 어떻게 이 동네로 이사를 오게 되었냐, 아이는 있냐, 어디 학교에 다니냐, 몇 학년이냐, 어디 어디 사는 사람도 애들 나이가 비슷한 집이 있는데 아침에 몇 시에 버스를 타고 학교에 간다, 그 집 엄마는 XX병원에서 일하더라 등등 원장님과 짧은 시간 동안 많은 동네의 정보를 IN&OUT 했어요. 게다가 모 연예인의 누나도 늘 Y 원장님께만 미용을 맡긴다고 이야기까지 하셔서 일에 대한 자부심까지도 느낄 수 있었죠.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Y미용실이 조금은 편해집니다. 하지만 여전히 조심스러워요. 그래서 귀는 Y미용실 원장님의 입술에 주파수를 맞춰 놓았지만 거울 속 제 모습을 확인하며 경계도 늦추지 않았어요. 우리는 처음 만났고, 저는 낯을 가리는 여자거든요.


  '어.. 어어.. 이거.. 방향이 아닌 것 같은데..!'

  Y 원장님의 '여전히' 마지막 페이지가 보이지 않는 이야기보따리 사이에서 말할 타이밍을 놓친 건지 아니면 원장님의 자부심에 작은 흠집이라도 내기 싶은 마음이 컸는지 끝에는 '안쪽'으로 말아주겠다던 손길이 바깥쪽으로 향하고 있었지만 차마 입술이 떨어지지 않았어요. 펌을 하는데 보통 2시간 정도가 걸리니 그 사이에 제가 '원장님, 컬 방향이 잘못된 거 아닐까요?'라고 물어보기나 했을까요?

  맞아요. 못 했어요. 대신 '저 로드(rod, 컬을 만들기 위해 머리카락을 마는 막대)를 풀면 내가 생각하는 안쪽으로 말린 컬이 나올 거야.'라며 Y 미용실 원장님을 향한 무한 신뢰를 만들어내고 있었지요. 음, 그래요. 신뢰가 아니라 회피이죠.


  드디어 마지막 중화제를 바르고, 머리를 감았어요. 아직은 자기 마음대로 오른쪽, 왼쪽으로 쭉쭉 뻗은 제 맘대로 컬이죠. 

  '윙윙-' 

  드라이기가 강력한 뜨거운 바람을 뿜어내고, Y 원장님의 손길도 바빠집니다. 제 입술을 바짝 말라가는데, 원장님의 입술은 바빠 보입니다.

  "잘 나왔어, 잘 나왔어! 파마약이 잘 먹언."

  시선을 둘 곳을 잃는 저는 마침 앞머리를 말리기 위해 온 드라이기 바람에 눈을 질끈 감아버렸습니다.

  곧 몸에 감겨 있던 수건과 미용 가운이 벗겨집니다. 붕붕 떠있던 머리카락이 차분하게 내려앉아 더 서늘한 기분이 듭니다.

   이제 우리가 헤어질 시간이 다가왔어요. Y 미용실 원장님의 총평이 이어집니다.

  "잘 나왔네. 고데기로 안으로 말고 다니면 이쁘겠어!"

   

  고데기를 잘 못 하는 여자는 머리카락을 다시 질끈 묶고 다녔어요. 그리고 그날부터 머리카락 계속 기르는 중입니다. 최소한의 정리만 하면서 말이죠. 다시 생각해 보니 '고데기로 안쪽으로 말고 다니면 된다'는 멋진 방법을 알려주신 Y 원장님의 마지막 말씀은 인생 선배로서의 조언이기도 해요. 인생은 원하는 대로 되진 않지만, 솟아날 방법은 있어요. 그렇지 않았다면 거울을 보며 속상해하면서 머리카락이 빨리 자라길 연구할 뻔했어요. 덕분에 마흔이 넘은 나이에 긴 생머리도 즐겨 봅니다. 다음 헤어스타일을 어떻게 할까 고민 중이에요. 아직 정하지는 않았지만 염색과 펌 없이 2년 가까이 기른 머리카락이라 단발커트이나 쇼트커트를 한다면 기부를 할 계획만 가지고 있어요.

  아침부터 뜬금없이 '긴 머리카락 관리법'이 유튜브 추천 영상으로 떠서 2편을 보았다가 머리카락에 대한 생각에 하루 종일 잠겨 있었네요. 그 생각들은 다음에 정리해서 다시 브런치 글로 올릴게요. 편안한 밤 보내세요.



매거진의 이전글 <The ONE Thing>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