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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이런 삶

누가 누굴

by 혼란스러워

“한이랑 만나서 얘기 좀 해줄래?”, “왜?”, “내가 걔 때문에 답답해 죽겠다. 내년 1년만 더 다니면 졸업인데 1년 휴학을 하겠다는 거야. 젊을 때 좀 즐기고 싶대. 내가 참 기가 막혀서.” 지난번 가족 모임 때 막내 누나가 나에게 조카 얘기를 했다. 누나는 딸을 둘 낳고 막내로 아들을 낳았다. 애지중지 키운 아들이 몇 해 전에 서울 소재 대학 행정학과에 입학했는데 한 학기 다니고 그만두고 다시 준비해서 취업이 보장되는 좀 특수한 대학에 입학했다. 어중간한 대학의 행정학과가 비전이 없다고 여긴 모양이었다. 내가 봐도 잘한 결정 같았다. 옮긴 학교는 크진 않지만 졸업만 하면 아주 탄탄한 금융 계열 회사에 입사할 수 있는 학교였다.


한이는 여자 친구도 사귀고 1년 다닌 후 군대도 다녀왔다. 복학해서 잘 다니나 싶었는데 뜬금없이 휴학하고 싶다고 하니 아이 셋 교육시키며 지쳐가던 누나가 폭발한 것이다. 부모 입장에선 자녀들이 하루빨리 학업을 마치고 독립하길 원하는 건 당연하니 누나 입장도 이해가 됐다. 하지만 조카의 생각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었다. 이럴 땐 어떻게 얘길 해줘야 할까. 그 조카 녀석은 재수생이나 마찬가지여서 다른 동기보다 일 년 늦다. 그런 마당에 가능하면 빨리 졸업해서 취업하고 안정을 찾는 게 낫지 않을까.


놀고 싶다면, 이번 여름 방학도 있고, 다음 겨울 방학, 그다음 여름 방학 세 번의 방학이 더 남아 있으니 얼마든지 놀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외여행이나 국내 여행을 다녀도 얼마든지 다닐 수 있고, 아르바이트를 해서 경험도 쌓을 수 있으니 말이다. 아주 구체적이고 특별한 계획이 없다면 자칫 시간 낭비만 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지금 방학을 해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고 하는데 아르바이트해서 용돈 버는 것도 좋지만 특별한 목적이 없다면 그렇게 버는 돈도 인생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하니 휴학을 하지 않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건 내 생각일 뿐 조카가 어떤 생각인지 아직 들어보지 않았으니 설득이 될지는 모르겠다. 누나 말에 의하면 그 녀석은 귀가 얇아서 다른 사람이 잘 얘기하면 생각이 쉽게 바뀐다고 했다. 지금 휴학하겠다는 것도 학교에서 선배들이 바람을 넣어서 그런 것 같아 보인다고 했다. 그렇다고 해도 내가 그 아이 생각을 바꾸는 게 맞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 큰 녀석한테 얘기해 봐야 잔소리 밖에 안될 가능성도 크다. 그냥 조카 만나서 저녁 한 끼 먹으며 이런저런 얘기한다고 생각해야겠다. 내가 누구에게 조언할 처지는 아닌 듯싶다. 내 삶도 엉망인데. 다 떠나서 조카가 부럽다. 아직 대학생이고, 여름 방학이고, 휴학할까 고민하는 그 젊음은 좀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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