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회사 책상 앞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메일을 확인했다. 어제 퇴근할 때 확인한 이후 추가로 온 게 없다는 사실에 안도하며 잠깐 쉰다. 문득 책상 위에 놓은 물건들이 거슬린다. 모니터 주변에 어제 커피 마시고 버리지 않은 일회용 컵과 물 마신 종이컵, 편의점에서 사서 마신 음료 병, 오늘 마신 단백질 음료 팩 등이 나뒹굴고 있다. 볼펜들, 샤프연필, 샤프심 통, 지우개, 포스트잇, 스테이플러, 딱풀 등의 문구들은 쓰고 던져 놓은 것처럼 아무렇게나 놓여있다.
그 외에도 무선 이어폰, 작은 수첩, 쓰지 않는 텀블러, 로션 통, 연필꽂이, 가글 통, 칫솔 치약 통, 치실이 들어 잇는 봉지, 어제 전달받고 뜯어보지 않은 우편봉투, 업무 폰, 손톱깎이 세트, 포스트잇, 안경 닦는 수건, 받은 명함과 내 명함, 병뚜껑 들, 통화하면서 끄적거린 메모지 등등 온갖 잡동사니들이 널려 있다. 이렇게 많은 것들이 좁은 내 책상을 채우고 내 팔은 그 사이를 비집고 간신히 키보드에 닿아 있다.
이 물건들이 내 삶을 채워준다. 피곤할 때 시원한 음료 마시며 갈증을 해소하고 스트레스를 풀었고, 기억해야 할 것을 포스트잇에 적어 붙여 놓았고, 통화하면서 상대방의 말을 메모하기도 했다. 손톱이 길어 키보드가 잘 안 쳐지면 손톱깎이 세트를 열어 다듬기도 했다. 너무 더워 세수를 하고는 로션을 발랐다. 모든 게 내 삶의 궤적이었다. 내 손때가 묻은 물건들이다. 나로 인해 이 물건들이 나에게 왔고, 이 물건들로 인해 내가 여기 있다. 유기물과 무기물이 만나 세상을 일군다. 이 물건들은 내 일거수일투족을 다 알고 있겠지. 내 통화 내용을 들었고, 내 한숨을 들었고, 내 웃음을 들었겠지. 내가 퇴근하고 난 뒤 모여서 내 험담을 하는 건 아니겠지?
한 번도 이 녀석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못 했다. 오늘 한 놈 한 놈 제자리 찾아주어 정리하면서 인사를 해야겠다. 나 일하는데 잘 도와줘서 고맙다고. 그동안 아무렇게나 던져 놨던 거 미안하다고. 내가 깔끔하게 정리하는 성격이 아니라서 나도 어쩔 수 없었다고. 아주 가끔 마음먹고 정리하기도 하지만 얼마 못 가고 다시 지저분해진다고. 앞으로는 노력하겠다고. 같이 오래오래 즐겁게 일하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