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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크림이

by 혼란스러워

지난 줄거리

네바 마스커레이드 종 고양이를 입양했다. 중학교 1학년 아들이 고양이 키우고 싶다고 계속 졸랐기 때문이다. 아들 녀석은 고양이 알레르기를 갖고 있다. 그래서 고민했는데 알레르기 반응이 덜 한 종이라고 해서 그 종을 선택한 것이다. 9일 정도 지난 시점에 중성화 수술을 위해 병원에 데려갔는데 혈액 검사를 한 의사가 백혈구 수치와 염증 수치가 높아서 수술을 못하겠다고 했다. 만성으로 보인다고 했다. 분양 업체에 전화해서 항의하니 자신들이 데려가서 협력병원에서 검사하고 수술해 보겠다고 했다. 수술 후 2주 정도 케어 후 건강하면 돌려보내고 안되면 자신들이 키우겠다고 했다. 결국 고양이는 중성화 수술을 마치고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건강해진 크림이

이름은 크림이로 지었다. 털 색깔이 크림 같아서다. 어젯밤에 다시 돌아왔는데 몸집도 커지고 훨씬 활발해 보였다. 수술도 무사히 했고, 검사 결과 상 건강하단다. 녀석은 잠시 냄새를 맡고 다니더니 집과 우리를 알아보는지 금세 친한 척을 했다. 털을 벗겨 주니 엄청난 양의 털이 빠졌다. 녀석은 느낌이 좋은지 계속 그런 거리며 몸을 비볐다. 가끔 급발진해서 무언가를 향해 달려가듯 거실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으로 달려가기도 했는데 전보다 훨씬 빠르고 과격해진 모습이었다.


전엔 야옹 하는 소리도 좀 특이했는데 지금은 일반 고양이와 다를 바 없는 소리를 냈다. 쓰다듬으면 더 만져달라는 듯 비벼댔고 손을 떼면 쳐다보며 야옹 소리를 냈다. 전엔 높은 곳도 잘 못 올라가더니 책상에도 한 번에 펄쩍 뛰어올랐다. 책을 읽으려고 앉으니 올라와서 책 앞에 웅크리고 앉는다. 거실 테이블에서 신문을 펼치니 신문 위에 올라가 앉기도 했다. 2주간 떨어져 있던 것을 보상이라도 받으려는 듯 애교가 더 는 것 같다.


아들과 크림이

아들은 크림이가 돌아온 것을 좋아하면서도 알레르기 때문에 조심스러워했다. 가까이 오지 못하고 만지지도 못했다. 처음에 코막힘과 눈 가려움 등으로 고생을 해서인지 스스로 조심하는 모양이었다. 좋아하는 고양이를 만져 보지도 못하는 게 안타까웠다. 알레르기를 줄여준다는 사료를 계속 먹으면 좀 나아지려나. 이 종은 알레르기가 덜하다고 했는데 제발 나아져서 크림이와 즐겁게 같이 살 수 있으면 좋겠다.


밤새 난동 부린 크림이

새벽에 우당탕 소리가 났다. 난 너무 깊이 잠들어서 크림이가 뛰어다니다가 무언가 떨어트렸다고 생각하면서도 일어나지 못했다. 아침에 일어나니 거실 작은 서랍장 위에 올려놓은 화분 세 개가 떨어져 박살 났다. 떨어져 깨질만한 물건은 다 치워야겠다. 이참에 필요 없는 물건 좀 버리고 집안 정리하면 되겠다. 어젠 밤늦게 도착해서 많이 놀아주지 못했는데 오늘부터는 많이 놀아줘서 체력을 소진시켜야겠다. 그래야 새벽에 조용히 잘 테니까. 새벽에 뛰어다니면 층간 소음 문제도 발생하니까. 크림이를 데려오고 나서 신경 쓰이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고 해야 할 일도 많이 생겼다. 부지런해져 야 한다.


크림이가 필요한 건 나?

아침에 출근하기 위해 가방을 메고 신발을 신는데 크림이가 나와서 가지 말라는 듯 비벼대고 야옹 야아옹 뭐라 말한다. "너 사룟값 벌려면 가서 일해야 돼, 잘 놀고 있어. 갔다 올게.” 하면서 한참을 만져 주고 나서 따라 나오지 못하게 멀찍이 밀어 넣고 잽싸게 나왔다. 그래도 출근하는데 배웅해 주는 건 크림 이뿐이구나. 아빠들이 반려견이나 반려묘 데려올 때 반대하다가 막상 살아 보면 제일 좋아한다더니 이래서 그런 건가 싶다. 크림이가 필요한 건 아들도, 아내도 아닌 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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