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속 여름
생각보다 빨리 찾아온 무더위가 당황스럽다. 여름을 한 두 번 겪는 것도 아닌데 이 여름 태양은 유독 뜨겁게 느껴진다. 날씨가 예전 같지 않다. 같은 여름이어도 이렇게 뜨겁지는 않았다. 기후 변화의 영향일까? 6월 20일경에 서울 한낮 기온이 35도까지 올라갔다. 이러다가 정말 지구가 멸망하는 건 아닐까? 하는 인류애적 걱정도 하게 된다. 하지만 내가 걱정한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니 그런 걱정일랑 접어 두기로 한다.
나무 그늘에 서면 그래도 시원하다. 나무라도 많으면 좋으련만 이 넓은 서울엔 맘 편히 쉴 수 있는 나무그늘을 찾기 어렵다. 가로수가 있긴 하지만, 가지를 단정하게 쳐놔서 그늘이 별로 없어서 있으나 마나 한 경우도 많다. 가로수가 양쪽에 있어서 터널처럼 그늘이 지면 좋으련만 땅 한 평이 돈인 이 서울에선 실현되기 어려운 얘기다.
어릴 적 동네 입구엔 큰 느티나무가 있었다. 그 나무 아래는 늘 바람이 불었다. 그래서 마을 어른들이 모여서 쉬기도 하고, 옥수수나 수박 등을 같이 나눠 먹기도 하는 장소였다. 아이들은 나무를 타며 놀았고 매매들은 쉬지 않고 울어댔다.
7월 17일 제헌절 즈음 여름 방학을 했고, 그즈음부터 8월 초까지 본격적으로 더웠다. 더웠지만 즐거웠다. 냇가에서 실컷 멱을 감기도 하고, 도랑에서 첨벙첨벙 물고기를 잡기도 했다. 시원한 계곡은 어름장 같이 차가운 물이 흐르고 그 모든 공간은 우리들의 것이었다.
한 바탕 놀다 보면 갑자기 먹구름이 몰려오고 우르릉 쾅쾅 천둥이 치며 소나기가 한바탕 내렸다. 포장되지 않은 길에 흙먼지가 일며 굵은 빗줄기가 쏟아졌다. 그리고 잠시 후 언제 그랬냐는 듯 하늘은 다시 맑게 개고 그렇게 한 여름날의 하루가 저물어 갔다.
밤이 되면 마당에 모깃불을 피우고 밀짚방석을 깔고 온 가족이 모여 앉아 더위를 피했다. 동네 할머니도 마실 와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다 가곤 하셨다. 누워서 보는 밤하늘엔 은하수가 펼쳐져 있었고 별들이 촘촘히 박혀 있었다. 운이 좋으면 별똥별을 보기도 했다.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추억 속 여름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