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냐 존재냐
어느 순간 무기력함이 날 짓눌렀다. 열심히 하면 성과가 나고 성과가 나면 인정을 받았기에 별생각 없이 일만 했던 결과일까. 남의 얘긴 줄만 알았던 번아웃이라는 증상을 느끼자 초조하고 불안했다. 누군가 말했다. 사람의 기본 값은 우울감이어서는 안 된다고. 그 말을 듣고 생각해 보니 어느 순간 얼굴엔 웃음기가 사라지고 몸은 피곤에 절어 있었다. 이렇게 살아도 좋은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없이 남들 사는 대로만 따라 살았다. 더 갖고자 했고, 더 채우려 했다. 가진 것을 돌아보고 감사하기보다는 갖지 못한 것을 생각하며 괴로워했다.
이런 생각을 하던 중에 에리히 프롬의 소유나 존재냐를 읽었다. 내가 봉착한 현재의 문제는 이 질문에 맞닿아 있었다. 작금의 세상은 끝없는 생산과 소비를 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그렇게 설계된 거대한 시스템에서 벗어나면 살기 어렵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아니 어쩔 수 없다는 생각도 하지 못한 채 그냥 살아간다. 끝이 없는 소유를 추구하면서. 소유는 또 다른 소유에 대한 갈망을 낳는다. 따라서 소유는 고통을 수반한다. 그 고통의 연결 고리를 끊어내지 못한다면 지금 마주한 삶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것이다. 결국 욕망을 채우는 방법에 관한 문제가 아닐까.
대부분의 욕망은 사회적, 지위적, 관계적 욕망에 뿌리를 둔다. 그 욕망을 채우기 위해 외부적인 것에 의존할 것인가. 내 존재 자체에 의존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인생의 중반에 접어들면서 중대한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었다. 자의든 타의든 이러한 갈림길에 서게 된 것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이런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병을 앓기만 했다면 삶은 무너졌을 것이다.
인간은 많은 시간을 무의식에 지배되어 살아간다고 한다. 매 순간 내리는 선택도 무의식적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젠 의식으로 무의식을 밀어내야 할 것 같다. 더 이상 무의식에 내 삶을 맡길 순 없다. 소유를 버리고 존재를 선택해야 한다는 의식적인 생각과 시도. 그동안 살아오면서 수많은 선택을 했다. 좋은 선택도 했고, 그렇지 못한 선택도 했다. 모든 결과가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이제 난 가장 중요한 선택을 남겨 두고 있다. 소유냐 존재냐 둘 중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