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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진감래(苦盡甘來)

퇴근 후 좋아하는 이불에서 게으름 피우기

by Rain Dawson

06시 30분, 퇴근 무렵.

내가 꿈속을 걷는 건지 사무실 쓰레기통을 비우는 건지 가물가물, 정신이 흐릿하다.


퇴근하고 운전해서 집에 갈 자신이 없다.

숙직실서 자고 가도 된다.

하지만 집에서 씻고 푹 자는 것이 회복에 가장 좋다.


이를 악물고 차를 몰아 집에 도착.

요거트에 과일과 견과류를 섞어서 거하게 한 그릇 했다.

내친김에 밥에 김 싸서 먹을까 하고 김을 자르는데, 갑자기 배가 몹시 불렀다.

결국 밥은 먹지 못했다. 대신 약은 성실히도 챙겨 먹었다.

원래 저녁에 먹는 약들인데, 야간 날엔 먹을 수 없으니 다음날 아침에 먹고 자는 것이다.


씻고 자리에 누운 게 08시 30분경.


바닥에 두꺼운 매트리스를 펼친 후 그 위에 두툼한 라텍스 이불을 깔고 내가 좋아하는 흰색 이불을 덮는다.


그 이불에 대해 설명해 보자면, 세 사람이 덮어도 될 만큼 넉넉한 크기에, 가볍지만 보온이 잘 되는 재질이다(정확히는 뭔지 모른다).

마치 5성급 호텔(가본 적 없음)에 가면 있을 듯한, 희한하게 쾌적한 이불이다.


솜이불처럼 푹 가라앉지 않아서, 안에 쏙 들어가서 천장(?)을 탁탁 치면 공간이 생긴 채 그대로 형상이 유지된다.

그래서 얼굴까지 덮어도 숨이 막히지 않는다.


어떤 이불인지 궁금해서 상표를 보니 'Made in Germany'라고 적혀있다.

내가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나라.


계속 이상한 꿈을 꾸었다. 퇴마하는 꿈으로 기억한다.

꿈에서 나타난 귀신 때문에 눈을 번쩍 뜬 게 15시경. 너무 졸려서 다시 자려고 했으나 쉽사리 잠이 들지 않았다.

1시간쯤 더 잤는데, 이번엔 극심한 허기 때문에 깼다.

거의 눈도 못 뜬 채 냉장고에서 곤약젤리와 견과류 한 봉지를 가져와 이불 속에 들어가 먹고 다시 누웠다.


고등학교 시절, 수험 공부에 지친 나머지 한 손엔 초콜릿을, 한 손엔 치즈를 들고 먹다가 잠들었었다는 친구의 이야기가 불현듯 떠오르게 만드는 나의 행태.


저녁밥 먹기 전까지 비는 시간 동안 운동을 할까, 했지만 정말 너무나 피곤하고 잠이 쏟아져서 할 수가 없었다.


저녁은 피자를 시켜서 반이나 먹어치웠다. 아! 왜 한 두 조각으로 멈추질 못하였던가.

다음엔 최대 2조각 이상은 먹지 말자고 다짐했다.


소화시키는 동안 설거지를 하고 멍하니 집안을 왔다 갔다 했다.


늘 해오던 대로 운동을 하고(힘들다), 씻고 다시 아까 그 이불속으로 들어간다.

오늘 날짜, 스키
로잉

야간근무의 쓰디쓴 시간이 지나가면, 이불과 함께하는 다디단 게으름의 시간.

(그리고 찾아오는 운동의 쓴 시간. 아직 달게 느껴지진 않음)


이제 내근으로 발령 나고 나면, 이런 휴식은 여느 직장인과 마찬가지로 주말에만 느낄 수 있게 되겠지.


고진감래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운동 재생목록 中

https://youtu.be/3VY7oa60Ig0?si=_GP-ftCRaKfTcwEf

사랑, 그 숨 막히던 순간, 에피톤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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