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으로 삶을 연결하다
같은 음식을 세 번 이상 먹으면 비로소 그 맛을 떠올릴 수 있다고 한다. 비 오는 날 막걸리가 생각난다면, 몸이 으스스할 때 콩나물 국물이 당긴다면, 어느 날 ‘그곳’을 지나다가 유난히 ‘그 음식’이 먹고 싶어진다면, 그건 그 맛을 알고 그 맛을 기억한다는 뜻이 된다.
사십 대 중반에 이르러 여러 이유로 가사 노동을 전담하게 되었다(그 이유는 내가 쓴 책 <제가 해보니 나름 할 만합니다>에 구체적으로 소개한 바 있다). 살림을 맡겠다고 했을 때 아내는 선선히 그러라고 했다. 귀찮은 일이 줄어드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가사 노동의 핵심은 단연 주방 일. 그 가운데서도 음식을 준비하는 일이다. 결혼하고 7년 후 아이를 가졌을 때 집밥 외에 어떤 음식도 삼키지 못했던 아내를 위해 요리를 시작했다. 산후 조리 음식도 딸의 이유식도 직접 내 손으로 만들었다. 그러니 영 초짜는 아니었고, 제법 수월하게 주방 일을 해낼 수 있었다.
살림을 맡은 후 요리 실력은 날이 갈수록 무르익었다. 웬만한 밑반찬 조리법은 10년도 훨씬 전에 사둔 요리책에서 익혀 잘 알고 있었다. 음식 할 일이 많아지면서 책에 적혀 있지 않은 적정한 시간과 불의 세기, 간 맞춤법 등 음식을 좀 더 먹음직스럽게 만드는 미세한 팁들을 경험으로 익힐 수 있었다. 인터넷과 유튜브에는 어떤 음식도 대령할 수 있을 정보와 노하우가 차고 넘쳤다. 요리 실력이 늘어갈수록 스마트폰을 켜고 조리법을 살피는 일은 줄어들었고, 어느 순간 검색이 필요 없어졌다. 주방에서의 시간은 ‘몸으로 익힌다’는 의미를 제대로 깨닫게 해주었다.
식구들이 외식을 하지 않아도 사는 데 아무 불만이 없어졌을 즈음, 그리고 나 역시 먹고 싶은 음식이 있으면 무엇이든 척척 만들 수 있게 되었을 무렵. 아내는 내가 준비한 음식을 한 젓가락 뜨자마자 “어머, 성수동 맛이네!” 하고 탄성을 질렀다. 성수동은 내가 태어난 곳이자 돌아가시기 전까지 엄마가 살던 동네. ‘성수동 맛’이란 곧 엄마의 음식 맛이라는 뜻이었다. 나는 단 한 번도 엄마로부터 조리 방법 따위를 배운 적이 없다. 그럼에도 내가 만든 음식에서 성수동의 맛이 난다니 신기한 일이었다. 정말 그런가 싶어 한 술 떠보았지만, 그냥 평소 만들어 먹던 음식 맛일 뿐이었다. 이게 성수동 맛이라고? 기분이 묘했다. 하긴 나는 결혼 전까지 28년 동안, 아니 결혼 후에도 몇 년 동안 엄마가 해준 음식을 먹으며 살지 않았던가. 엄마의 음식은 내 성장의 자양분, 내 생활의 배터리, 내 삶의 동력이 아니었던가. 평생 동안 먹어온 엄마의 음식이 모든 맛의 기준이 되어 있다는 건 당연하고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리고 나는 힘을 얻어 엄마의 음식을 식탁에 올리기 시작했다. 지난 시절의 맛들이 하나씩 둘씩 떠올랐다. 어렸을 때 엄마가 늘 해주던 음식, 때만 되면 아무렇지 않게 받아먹었던 음식, 그렇게 내 입맛을 길들이며 추억을 만들어준, 그러나 엄마가 돌아가시고 더 이상 먹지 못했던 음식들이 새삼 그리워졌다. 하지만 그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떤 음식은 손쉽게 할 수 있는 반면, 어떤 음식은 상당한 공과 노력과 시행착오가 필요했다.
생각 날 때마다, 혹은 특별한 날이 다가와 엄마가 해주던 음식을 만든 날이면 식사하는 내내 말이 많아졌다. 음식을 바라보면, 냄새를 맡으면, 한 점 한 점 맛을 보면, 잊었던 지난 추억이 무시로 떠올랐다.
그리고 엄마가 나를 위해 해준 음식을 이제는 내가 딸에게 전하는 기분이 묘했다. 엄지 척을 투척하며 열심히 맛있게 먹어주는 모습을 바라보며 설명하기 힘든 복잡한 감정에 휩싸였다. 결혼 후 15년 동안 시어머니와 이래저래 관계가 엮여 있던 아내와 달리, 다섯 살 때 큰 수술을 한 탓에 3년 후 돌아가실 때까지 할머니 댁에 왕래가 많지 않았던 딸에게는 할머니의 음식에 대한 별다른 기억이 있을 리 없었다. 그런 딸에게 엄마의 맛을 전하는 행위는 마치 내 지난 시간을, 잊고 있었으나 소중한 엄마의 역사를, 돌아가시기 전까지 유난히 손주의 건강을 걱정하고 안쓰러워했던 할머니의 온정을, 고스란히 아이에게 전하는 것 같은 벅찬 기분에 잠기게 했다.
어쩌면 삶의 일정 부분은 이렇게 이어지는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다. 딸은 유난히 할머니를 많이 닮았다. 동그란 얼굴형도, 짧은 팔을 흔들며 약간 사뿐거리면서 걷는 걸음걸이도, 가끔은 아내도 나도 수화기 너머 깜짝 놀라곤 하는 목소리도. 그런 딸에게 심어주는 내 기억의 맛은, 그렇게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는 작은 연결고리가 아닌가 하는 착각에 빠져들었다.
“오늘 뭐 먹어?”
딸이 내게 가장 많이 하는 말이다. 오늘 무엇을 먹을지가 매일의 고민이다. 가끔은 그 고민 끝에 엄마를 찾고 엄마의 맛을 찾고 추억을 찾는다. 그렇게 어제와 오늘과 내일이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