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채
더 이상 고기를 먹지 않은 지도 벌써 오 년이 지났다. 이러저러한 고민과 몇 가지 우연 따위가 겹치며 세운 결심을 다행스럽게도 기꺼이 잘 유지하고 있다.
고기를 먹지 않아야겠다고 마음을 굳혔을 때 가장 큰 고민은 경계를 어느 선까지 하는가에 있었다. 과연 얼마나 잘 실천할 수 있을지 가능 범위와, 내 결심과 무관한 식구들이 겪을 정서적 불편을 최소화하는 게 가장 중요한 기준이었다. 그리고 숙고의 결과로 생선과 유제품은 허용하고 고기만 먹지 않는 이른바 ‘페스코+(베지)테리언’으로 살아보기로 결정했다.
나는 어려서부터 유난히 고기를 좋아해 어른들로부터 시도 때도 없이 정육점 딸에게 장가보내야겠다는 말을 들었다(왜 나에게 직접 정육점 주인이 되라는 제안을 하지 않았는지, 그 맥락 속에 얼마나 많은 함의가 담겨 있는지 의심을 품게 된 건 한참 후의 일이다). 하루라도 고기를 먹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지는 않더라도 사는 게 왠지 슬프고 무기력해지곤 했을 정도였다. 그런 내가 별 어려움 없이, 어떤 유혹에도 흔들림 없이 고기를 먹지 않게 된 건 여간 신기한 일이 아니었다.
이전까지와 제법 다른 방향으로 식습관을 바꾼 뒤에도 고민은 여전히 이어진다. 환경과 동물권 관련 책들을 탐독하면서 이제는 생선이나 해산물, 유제품도 줄이거나 끊어야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들이 그러하다. 더구나 애용하는 라면이나 식용유에 들어 있는 팜유 소비가 지구 환경을 파괴한다는 글을 떠올릴 때면 불편한 감정을 어쩌지 못한다. 그게 아니더라도 나는 뭐든 너무 많이, 많이 먹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더 이상의 변화는 잘 이뤄지지 않는다. 음식을 가리지 않는 아내와 딸이 느낄 부담도 고려해야 하고, 무엇보다 일상생활 내내 맛난 것을 찾는 욕망을 좀처럼 참아내지 못한다. 결국 고민만 하다가 죽을 것 같다. 그저 한 달에 일정 기간을 정해 이날은 락토식만, 이날은 오보식만, 또 이날은 락토-오보식만을 실천해볼 따름이다(유난한 한식주의자인 나는 기존의 김치를 먹지 않는 이상 아무래도 비건식은 불가능하다).
내가 가장 좋아하고 식구들도 모두 만족해하는 요리 가운데 하나는 잡채다. 삼 년 전쯤인가, 사놓고 전혀 사용하지 않아 냉장고에 불편한 기색으로 들어 있는 파프리카를 어떻게 처리할까 고민하다가 처음 무쳐 보았다. 세상에,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왜 여태 안 해먹었지? 싶었다. 당시에는 고명 가운데 하나로 어묵을 채 썰어 넣었다. 언젠가부터 어묵을 느타리버섯으로 바꾸자 완전한 채식 요리가 되었다.
어린 시절, 유독 손을 대지 않은 잔치 음식이 바로 잡채였다. 어떤 음식이든 푸짐하고 먹음직스럽게 만들어내던 엄마는 자신을 제외한 가족들의 생일이면 어김없이 다양한 음식들과 함께 잡채도 빼놓지 않고 상 위에 올렸다. 유난히 입이 짧아 국과 김, 약간의 생선살 외에는 손을 대지 않는 아버지, 그리고 편식도 심하고 섭취량도 적어 금세 식사를 마치는 형과 달리, 밥상 위의 모든 음식을 두루 그것도 바닥이 보일 때까지 먹고야 마는 나를 엄마는 늘 흐뭇하게 바라봐 주었다. 누가 봐도 식구 중에서, 심지어 손님까지 포함해서도 가장 많이 먹는 내게 “우리 아들, 많이 먹어.”라는 말을 잊지 않았고, 나는 왠지 그 말을 듣는 게 그렇게 기분 좋을 수 없었다.
잡채는 잔치 음식 가운데 가장 나중까지 남아 밥상에 올라오는 음식이었다. 어차피 아버지나 형에게는 큰 기대가 없었으니 끝까지 남는 음식의 책임은 전적으로 나의 몫이었다. 손님이 찾아오는 아버지 생일 때는 크게 표가 나지 않지만, 식구끼리만 음식을 나누는 형이나 나의 생일이면 더욱 눈에 뜨였다.
“막내아들, 잡채 좀 먹어봐.”
다른 음식과 달리 잡채를 멀리하는 내게 엄마는 늘 권하곤 했다. 알았다고, 그러겠다고 대답은 시원하게 하면서도 정작 젓가락을 가져가지 않으면 결국 엄마가 남은 잡채를 혼자 다 먹어치웠다. 그러고는 물었다.
“왜 안 먹지? 이렇게 맛있는데?”
나는 대답했다.
“잡채엔……, 고기가 없잖아.”
바로 그 다음부터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언제부터인가 엄마가 무치는 잡채에는 얇게 썬 돼지고기가 고명처럼 올라와 있었다. 잡채 재료를 준비하면서 전에 내가 한 말을 기억하고 있었던 것일 테다.
이후 내가 잡채를 좋아하게 되었느냐고? 아니다. 그때부터는 잡채에 섞여 있는 고기만 얄밉게 골라먹기 시작했다. 그래서 여전히 잡채는 우리 집 잔치가 끝난 뒤 항상 마지막까지 올라오는 음식으로 남아 있었다.
언제부터 잡채라는 음식을 즐겨 먹게 되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는다. 먹는 음식의 팔십 퍼센트가 술안주였던 이십 대 때는 아닌 것 같고, 미친 듯이 일에 쫓기던 삼십 대 때는 더더욱 아닌 것 같다. 아마도 나이가 들면서 맛에 대한 다채로운 각성이 이뤄지며 선택하고 즐기는 음식도 함께 달라졌을 것이다.
아무려나 지금의 나는 어린 시절 고기가 들어가지 않아 전혀 손대지 않던 음식을, 고기가 들어가지 않는다는 이유 때문에 더욱 사랑한다. 삶이란 늘 그렇게 변화하고 또한 예측할 수 없는 모습으로 갱신된다. 하나를 잃고 하나를 얻는 게임의 연속. 그것이 인생이 아닌가.
한동안 아내는 귀찮은데 뭘 그렇게 만들려 하느냐고 반대했지만, 사실 잡채는 결코 조리 과정이 복잡하거나 어려운 음식이 아니다. 당면을 불리느라 기다리는 시간을 제외하면 금세, 그리고 뚝딱 만들 수 있다.
우선 당면을 넉넉하게 떼어 찬물에 불려야 한다. 굳이 찬물? 하고 뜨거운 물에 불리면 당면의 탱탱한 식감도 줄어들고 불어 터진다. 시간은 30분 정도, 마른 당면 특유의 딱딱한 느낌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불린다. 시금치 반 단과 얇게 채 썬 양파 1/2개와 당근 2/3개, 느타리버섯 2~3덩이를 준비하면 재료도 끝. 시금치는 끝만 자르고 당근은 채칼로 깎고 느타리버섯은 손으로 뜯으므로, 정작 칼질은 양파만 하면 된다.
살짝 기름을 두른 팬에 양파와 당근을 볶다가 익기 시작하면 약간의 소금과 함께 느타리버섯과 시금치를 넣고 마저 볶는다. 불린 당면은 끓는 물에 넣고 5분 정도 데친다. 조금 퍼지나 싶을 때까지 데쳐도 된다. 찬물(얼음도 몇 개 포함하면 좋고)에 빨래하듯 행구면 다시 쫀쫀하게 탄력이 살아나기 때문이다.
전형적인 한식 양념을 준비한다. 간장 3~4숟가락, 설탕 1숟가락, 다진 마늘 1숟가락, 후추 넉넉히, 참기름 2숟가락, 깨 1숟가락 등을 적절히 섞는다.
나는 골고루 베이기를 바라는 마음에 먼저 물기를 뺀 당면에 양념 2/3을 먼저 넣고 버무리다가, 색이 골고루 입히면 그때 채소와 남은 양념을 붓고 마저 섞어 마무리한다. 당면과 채소와 양념을 한꺼번에 섞는다고 맛에 큰 차이가 느껴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저 기분상 대체로 그렇게 한다.
잡채는 식사대용으로도, 막걸리나 맥주 안주로도, 반찬으로도 그만이다. 요즘은 한 달에 두 번 이상 잡채를 만들어 먹는다. 아침에 잡채를 무치면서 “어쩌지? 너무 많이 했나?” 라고 말하기 일쑤지만,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다음날까지 먹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은 비밀이 되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