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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비내린 May 07. 2020

일란성쌍둥이라서 좋습니다

어릴 적부터 대학 졸업 전까지 쌍둥이 동생과 함께 지냈다. 주변 사람들에게 일란성쌍둥이라고 말하면 '쌍둥이가 있어서 좋겠다'는 얘기를 듣곤 했는데, 동생과 같이 있는 동안에는 뭐가 부러운지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외동이 아니라 형제나 자매가 있는 지인들도 자기와 닮은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고 하니 가족과는 또 다른 무언가가 있었으리라. 졸업 후에 처음으로 제대로 된 독립(홀로서기)을 하면서 몇 개월 이상을 떨어져 살다 보니 지인들이 말한 '좋겠다'는 의미를 그제야 알게 됐다.


학창 시절에는 일란성쌍둥이라는 사실이 부끄러웠다. 초등학생일 때는 동생이 있는 반 친구들이 우리 반에 찾아와 똑같이 생겼다며 꺄르륵 댔는데 마치 동물원 우리에 있는 원숭이가 된 기분이었다. 나는 나로 살고 싶은데 둘을 하나로 엮어 동일시되는 게 싫었다. 그래서 동생과 붙어 다닐 때는 일부로 머리 길이를 다르게 한다던지, 안경테를 달리한다던지 해서 구분되게 보이려고 노력했다.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게 친구도 따로 사귀었다. 그렇게 해서 나와 동생은 각기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보이고 싶었다.


중고등학교는 거리상 어쩔 수 없더라도 대학만은 쌍둥이가 아닌 나로 살아가고 싶었다. 아버지의 강경한 반대로 어쩔 수 없이 동생의 성적에 맞춰 대학을 진학해야 했지만 다행히 캠퍼스는 넓고 부딪힐 염려가 없어 온전한 나로서 생활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쌍둥이로 신기하게 보는 시선이 두려워지지 않게 되었다. 동생도 나도 먼저 일란성쌍둥이라고 대학에서 말하고 다니지 않아선지 주변사람들이 나를 동생으로 오인하면서 벌어지는 재밌는 에피소드들이 있었다.


번은 친구들과 카페에서 음료를 주문하는데 직원이 갑자기 '언니 안녕하세요!'하고 반갑게 인사를 했었다. 나는 얼굴도 모르는 사람이 인사를 걸어와서 당황했는데, 이내 동생과 친한 사이란 걸 알아채고 쌍둥이라고 밝혔다. 직원도 당황하고 나도 당황하면서 어버버 거리는 상황은 지금 생각해도 웃기는 추억으로 남아있다. 예상치 못했던 상황과 그로 인해 생기는 재미난 기억들 덕분에 처음으로 쌍둥이라서 좋다고 느꼈다.


동생과 떨어져 홀로 서울살이를 하다 보니 빈자리가 크게 느껴졌다. 누군가는 쌍둥이는 텔레파시가 통한다고 우스갯소리로 얘기하지만, 나는 텔레파시라기보다는 태어나서 살아온 환경, 사람들의 동일한 시선 등으로 인해 사고방식이 비슷해진 것이라 말하고 싶다. 돌이켜보면 동생과는 주절이 얘기하면서 내 생각이 거부당할까 두려웠던 적이 없었다. 동생도 나도 속속들이 서로를 알고 있기에 어떤 얘기를 해도 괜찮다는 걸 은연중에 알았기 때문이다. 사회에 나오면서 스스럼없이 얘기할 기회가 잘 없다는 걸 안 이후로 쌍둥이가 있다는 게 참 다행스러운 거구나 생각했다.


나는 요즘에도 처음 만나는 사람들에게는 먼저 밝히지 않는다. 우선은 '나'라는 사람을 독립적으로 인식하게 만들고 나서, 그제야 일란성쌍둥이라는 사실을 밝힌다. 그럴 때마다 사람들이 깜짝 놀라며 쌍둥이일 줄은 전혀 몰랐다고 얘기한다. 그 반응을 보는 게 재밌기도 해서 은근슬쩍 돌려서 얘기하기도 한다. 가령 '동생이 있는데, 나이가 같아요'라는 식으로 읭 스럽게 만든 다음 '저 일란성이에요'라고 부연설명을 덧붙이는 식이다. 대화를 유쾌하게 풀어나갈 때 꺼내기도 좋기도 해서 쌍둥이라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내보이곤 한다.


누군가 내게 '쌍둥이로 살면 어때요?'라고 묻는다면 이전 같으면 '그저 그래요.'라고 답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일란성쌍둥이로 살아가는 것이 좋다고 자신 있게 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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