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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비내린 Jun 20. 2020

일상의 작은 변주

하천을 걸어보다

나는 선택의 기로에 서 있었다. 무시하고 평소대로 산책길로 걷느냐, 아니면 운동화가 젖는 걸 감수하고 건너편으로 가느냐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면 되는 것이다.


매일 같은 길을 걷다 보면 처음 걸을 때 놀라웠던 경치도 시큰둥해지기 마련이다. 계절이 변함에 따라 이전에 피었던 꽃들이 지고 새롭게 피는 꽃을 보면 경이롭지만 매일 다른 점을 찾기란 쉽지 않다. 반복적인 일에 쉽게 지겨워지는 내가 같은 길을 꾸준히 걷을 수 있었던 이유는 일정한 큰 틀 안에서 작은 변주를 넣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지금처럼 원래 가던 산책길 대신 건너편을 가는 것이 하나의 변주라고 볼 수 있다.


나는 같은 길을 걷는 것이 지루해질 즈음 다른 루트를 찾아보곤 한다. 원래 가던 끝보다 더 멀리 나가보거나, 중간에 멈춰 서서 관찰하거나, 아니면 이전에 가보지 못한 곳을 탐험한다. 오늘은 세 번째 루트에 해당한다. 산책길 옆에 흐르는 하천에는 가끔 얕은 곳이 있다. 나는 우연히 흰색 왜가리가 물길을 따라 걷는 것을 보며 알아챘다. 내가 건너가려는 길이 바로 하천의 얕은 부분이었다. 양쪽에 타이어 자국이 남아있는 걸 보니 차가 오가는 길인 게 분명했다.


그럼에도 하천을 건너기 전 몇 번이나 머뭇거렸다. 안 가본 장소에 대한 호기심과 운동화가 젖고 난 뒤 찝찝함 사이에서 무엇을 따를지 저울을 재보니 역시나 호기심이 우선이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양말을 한 짝씩 벗고 한 손에 쥐고 맨발에 운동화를 신었다. 한발 한발 조심히 움직이자 금세 운동화에 물이 차올랐다. 오뉴월의 뜨거운 햇살 아래 시원한 강물에 발을 담그니 젖은 운동화의 찜찜함도 잊어버렸다.


강을 한번 건너고 나니 용기가 생겨 다시 한번 건너본다. 빠른 걸음으로 걷다가 강물의 힘센 손아귀에 깜짝 놀랜다. 한발 내딛을 때마다 휘어잡아 밀어내는 힘에 발이 자꾸만 휘청거렸다. 혹여나 넘어질까 조심하며 건넜다. 길 중간에 잠시 서서 하천을 바라본다. 물고기는 가만히 있는 게 아니라 열심히 몸을 놀려 그 자리에 꼿꼿이 서 있는 거구나. 잠시 물고기의 입장이 되어 본다. 돌아가는 길 푹 젖은 운동화를 벗 삼아 물 내음을 맡으며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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